올 하반기 고용시장이 안갯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다. 주요 기업은 채용 인원은 물론 채용 시기조차 결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내세우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시간당 최저임금 1만원으로 인상, 근로시간 단축 등 노동 관련 정책이 큰 부담을 주면서다. 채용 담당자들 사이에서는 “기업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볼멘소리가 가득하다.

15일 한국경제신문이 주요 기업과 금융회사의 올 하반기 채용 일정을 취재한 결과 대부분 기업 인사담당자들이 손을 놓고 정책 추이를 관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업무상 필요에 따라 뽑는 경력직보다는 대졸 신입사원 채용시장의 불확실성이 더 커지고 있다. 대졸 신입사원은 일반적으로 1년에 두 차례 선발한다. 이맘때는 하반기 채용계획을 수정하거나 확정하는 시기다. 인건비와 실적, 부서별 충원 요청 등을 고려해 숫자를 줄이거나 늘린다. 기업의 전체 사업방향과 투자계획은 기본으로 깔린다. 올해는 상황이 완전히 틀어졌다. 계산기만 두드릴 뿐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기업이 수두룩하다. 중공업분야 한 대기업 인사담당 임원은 “매번 회의만 반복할 뿐 누구도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만큼 노동 정책의 파괴력이 크다는 얘기다.
대기업 하반기 채용 '시계 제로'
대기업 인사담당자들의 머릿속을 하얗게 만든 첫 번째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자리 정책의 신호탄으로 지난달 인천공항공사 비정규직 1만 명의 정규직 전환 발표를 이끌어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원론적 비판’을 내놨지만 “반성하라”는 대통령의 한마디에 곧바로 진압됐다.

정부의 일자리 정책이 되레 청년 실업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는 역설도 제기된다. 중견기업 인사담당 임원은 “일반적으로 비정규직은 정규직보다 업무량이나 강도, 책임 등이 덜하다”며 “이들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어쩔 수 없이 지금보다 업무량을 늘리고 교육도 따로 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한 사람 몫의 일이 더 늘고 기업 비용도 늘어나게 된다. 하지만 기업들이 이런 불편을 감수하면서 지속적으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꿀지는 의문이다. 기업 관계자들에게서 “정규직 전환을 해야 하는 분위기라면 신입채용 비중을 20~30% 정도 줄이거나 기존 비정규직을 미리 해고하는 수밖에 없다”는 말이 자꾸 흘러나오는 이유다.

‘3년 내 최저임금 1만원’ 정책도 마찬가지다. 공개적으로 비판하지 못할 뿐 기업들 내부에서는 비현실적인 정책이라는 말이 무성하다. 비용을 통제하면서 인력 수급계획을 짜야 하는 기업들로선 추가로 사람을 뽑기가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10대 그룹의 한 계열사 관계자는 “우리 회사만 놓고 봐도 최저 임금을 100원 올리면 70억원의 비용이 더 들고, 3년 내 1만원 인상을 지금 당장 적용한다면 2700억원가량이 추가로 필요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올리면 현대자동차 1차 협력사의 고졸 평균 임금이 7000만원을 넘어간다는 업계의 추산은 ‘엄살’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게 기업 현장의 목소리다.

제조업체 관계자는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면 골치 아픈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지금처럼 계속 임금이 오르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공태윤/안재석 기자 true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