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공시족'만 그득한 나라…미래 있겠나
그리스가 국가부도 위기에 몰린 2010년 일이다. 국제기구와 유럽연합(EU) 국가들이 공무원 수 통계를 주문했다. 구제금융 대가로 공공 부문의 구조조정을 요구하기 위해서였다. 정부가 조사에 나섰다. 그리스 역사상 첫 공무원 통계였다.

공무원 수는 취업자의 17.5%나 됐다. 하지만 정확한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24%라는 보도가 뒤를 이었다. 네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공무원인 셈이다. 통계는 없거나 틀리고, 공무원 수는 끝이 없다. 나라가 제대로 굴러갈 리 없다.

문재인 정부가 가장 먼저 챙긴 게 일자리다. 무엇보다 81만 개 공공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각오는 단단해 보인다. 그러면 81만 개라는 숫자는 어디서 온 것일까.

출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5년 정부 일람’ 통계다. 전체 고용에서 공공이 차지하는 비중이 OECD 평균은 21.3%인데 한국은 7.6%에 불과하다는 내용이다. 정부는 이를 토대로 공공의 고용 비율을 3.0%포인트 정도 높여 OECD 평균의 절반 정도만 만들어도 일자리 81만 개는 창출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낸 것이다.

하지만 숫자를 믿기 어렵다. OECD는 고용 통계를 국제노동기구(ILO) 것을 쓴다. 하지만 한국은 정부가 제출한 통계를 썼다고 표시해 놓고 있다. 행정자치부가 각 부처에서 취합했다는 숫자다. 그 191만6000명은 들어본 적이 없는 숫자다. 믿을 수 없는 숫자를 취업자 수로 나눴으니 신뢰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3년 전이다. 칼럼에서 공무원 수 통계를 비판한 적이 있다. 그때 정부가 내놓은 반박 자료에 국제 기준으로 정확히 계산했다는 공공 일자리 수가 161만 명이었다. 그 숫자를 믿지 않았지만 그새 30만 명이나 늘어난 숫자를 어떻게 믿어야 하는가.

며칠 전에는 노동연구소가 ‘새 정부 공공 부문 일자리 정책’ 보고서를 내면서 공공 일자리를 209만 명이라고 했다. 역시 처음 본 숫자다. 이렇다면 공공 일자리 비중은 취업자 대비 8%대, 임금근로자 대비 10%대로 올라간다.

게다가 정부는 OECD 평균 복지공무원 수는 1000명당 12명인데 한국은 0.4명에 불과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평균의 절반 수준까지만 늘려도 30만 개의 일자리가 생긴다며 말이다. 하지만 그 일자리는 정규직의 처우가 높아 민간에 넘긴 일자리다. 이미 공공 일자리로 카운트됐어야 한다는 얘기다. 이러다보면 공공 일자리는 300만 명을 향해 치닫게 된다.

국제기구가 한국의 고용 통계를 믿을 리 없다. 그래서 지난 정부가 공공 일자리 통계를 행자부가 아니라 통계청에 맡겼다. 그 첫 결과가 이달 나온다. 하지만 여전히 헷갈리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국제 기준 통계의 부작용을 우려해서다.

비정규직은 물론 일용직도 포함해야 한다. 군은 직업 군인만 포함시킨다 하더라도 행정 업무에 근무하는 전경, 의경, 공익근무요원 등도 공공 일자리다. 재정 지원을 받는 중등학교 교사나 병원·사회복지기관 일자리도 마찬가지다. 공기업과 지방공사·공단은 어떻게 처리할지 궁금하다. 공공 일자리 수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늘어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정부로서는 싫은 결과겠지만 공공 비중은 이미 OECD 평균의 절반을 넘었을 수도 있다.

공무원 규모를 단지 머릿수로만 따질 일도 아니다. 비용도 따져봐야 한다. 임금 근로자 가운데 공무원 비중은 7.4%에 불과하다지만 일반 정부 지출에서 공무원 보수가 차지한 비중은 21%다. OECD 평균은 23%다. 이미 선진국 수준이라는 얘기다.

소방·치안 분야가 일부 취약하다지만 나머지 공무원은 모자란다 할 수 없다. 국제 기준으로 통계를 내는 일본도 공공 비중이 7.9%에 불과하다. 복지 선진국이 도입한다는 기본소득제라는 것도 결국 공무원 감축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고용은 기업이 늘리는 게 정답이다. 민간에 활력을 불어넣을 시점이지, 막대한 세금을 더 거둬 ‘철밥통’을 키울 때는 아니라는 얘기다. ‘큰 정부’ ‘작은 정부’ 차원의 얘기가 아니다. 노량진 학원가를 가득 메운 ‘공시족’을 보라. 우수한 인재들이 민간의 성과를 나누는 역할이나 하겠다고 아우성이면 이 나라에 무슨 미래가 있다고 하겠는가.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jh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