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아베의 비정규직 정책이 주는 교훈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를 모르는 한국인은 거의 없다. 하지만 아베 총리의 전임자가 누구였는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웬만큼 일본 정치사에 관심 있는 사람이 아니고선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전 총리의 이름을 떠올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베 총리는 1980년대의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와 2000년대 초반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에 이어 한국인들 뇌리에 확실하게 각인된 얼마 안 되는 일본 정치인 중 한 명이다. 그는 지난 28일자로 2차대전 이후 역대 3위의 장기집권 일본 총리(1981일)로 자리매김했다.

탄탄한 아베 총리의 입지와 대조적으로 아베 총리에 대한 한국인의 이미지는 썩 좋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위안부에게 사죄 편지를 쓰는 것을) 털끝만큼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을 보고 좋은 생각을 하긴 쉽지 않다. 한국 특사단을 향해 “문재인 대통령이 정말로 북한에 먼저 갈 것이냐. 성급한 행동”이라고 직설적으로 언급한 것은 보기에 따라서는 외교적 결례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그가 어떻게 해서 안정적으로 정국을 운영하고 있고, 탄탄하게 지지기반을 다졌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시장 자율에 맡긴 노동시장 개혁 행보를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기업을 압박해서는 원하는 결과를 낼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의 비정규직 해법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일본은 비정규직 비율이 37.5%(2016년 기준)에 이르지만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의 노동형태에 집착하진 않는다. 정부가 임금 수준, 고용 안정성, 근무환경이라는 본질을 고려해 시장의 요구를 반영하며 자연스럽게 해법을 찾아가고 있다.

‘한정사원(限定社員)’ 활용이 좋은 예다. 고령화와 저출산으로 일손 부족 문제가 심각한 일본 산업계는 노동력 확보 차원에서 비정규직 근로자에 비해 고용 안정성을 강화한 한정사원 채용을 늘리고 있다. 한정사원은 근무장소, 직무, 근무시간 등에 제한이 있고 정규직보다 임금이 적은 대신 초과근무 등의 구속이 적고, 비정규직에 비해선 직업 안정성과 임금이 높은 중간 형태다.

한국에서라면 비정규직의 변형 형태라며 비판의 목소리가 나올 수 있겠지만 일본에선 초과근무가 없고 원치 않는 전근을 갈 필요도 없어 직장 생활환경이 개선된다며 반기는 목소리가 많다. 정부가 무조건적으로 정규직 고용을 늘리라고 강요한 것이라기보다 기업과 근로자의 필요와 수요에 맞춘 ‘친(親)시장적’ 해법이라고 할 만하다.

문 대통령은 ‘비정규직 제로(0)’를 주요 국정과제로 내세웠다. ‘무조건 비정규직은 안 된다는 인식은 현실에 맞지 않다’는 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의 발언을 청와대가 직접 나서 “사회 양극화를 만든 당사자가 할 말이 아니다”고 찍어눌렀다.

비정규직의 처우를 개선하고, 고용 안정성을 높여야 한다는 당위는 반박하기 어려운 문제다. 하지만 비정규직을 줄이면서 전체 고용을 늘리겠다거나, 정규직을 늘리면서 근로시간은 줄이겠다는 모순된 주문을 기업에 강제하는 것은 정답이 아니다. 강압에 의존하기보다 기업을 이해하고 노동시장과 교감해온 아베의 일본이 구체적인 성과를 내고 있는 점을 눈여겨봐야 한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