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탕 삼탕' 지역 SOC공약…다 지키려면 200조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경북 김천에서 경남 거제까지 연결하는 ‘남부내륙철도 건설’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공약했다. 경남 지역의 취약한 교통 인프라를 개선하겠다는 취지다. 그런데 이 사업은 이미 박근혜 전 대통령이 추진했다가 무산 위기에 놓인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는 2014년부터 3년간 추진한 이 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 끝에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결론을 내렸다. 문 대통령이 전 정권의 공약에 대한 면밀한 검토 없이 지방자치단체의 민원을 그대로 차용한 것이다.

이에 대해 이광재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총장은 30일 “지역 공약은 중앙정부 공약에 비해 관심도가 떨어지고 지역민 표심 얻기에 좋다 보니 대선 과정에서도 거의 검증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한국경제신문이 이날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 발표한 지역 공약 146개를 분석한 결과 상당수가 ‘재탕’ 수준에 머무른 것으로 나타났다. 또 공약 대다수가 공항, 철도, 도로 건설 등 대규모 예산이 소요되는 ‘선심성’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런 공약 사례는 한둘이 아니다. 문 대통령은 부산 지역 공약으로 위기에 처한 해운 물류산업을 살리기 위해 자본금 4조~5조원 규모의 한국해양선박금융공사를 신설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이 공약은 박근혜 정부에서 2013년 금융위원회의 반대로 백지화된 선박금융공사와 차이가 없다.

이전 정부에서 추진 중인 공약을 시기만 앞당겨 발표한 ‘얌체 공약’도 있다. 서울~세종 고속도로 건설 사업은 6조7000억원의 재원이 소요되는 박근혜 정부 최대 규모 국책사업이었다. 지난해 말 착공에 들어가 2025년 완공을 목표로 했다. 문 대통령은 완공 시기만 2년가량 앞당겨 ‘서울~세종 고속도로 조기 완공’을 약속했다. 문 대통령의 수도권 공약인 GTX(수도권 광역 급행철도) 노선 조기 착공, 한반도 비무장지대(DMZ) 통일 관광특구 등은 지난 대선은 물론이고 선거철마다 제시된 ‘단골’ 공약이다.

이 사무총장은 “한 해 평균 SOC 예산이 22조원 수준인데 문 대통령의 SOC 공약을 전부 실현하려면 대략 200조원이 필요하다”며 “하지만 공약 이행 방안에 대해선 밝힌 게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선거 막판에 표를 의식해 지역 민원을 그대로 수용해 공약으로 발표한 것이라 실제 집행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꼬집었다.

문재인 정부 인수위원회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이날 지방 공약 사업을 종합 검토하고 실행 계획을 마련하기 위한 ‘지방 공약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기로 했다. 박광온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지방 공약 TF가 공약들을 이행하는 데 필요한 재정 수요를 먼저 파악한 뒤 사업의 우선순위를 정해 지방자치단체와 협의하게 될 것”이라며 “지방 공약들은 대체로 사업 공약이 많은데, 재정이 수반되기 때문에 치밀하게 검토해 실현 가능한 사업을 우선 확정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김진표 국정기획위원장은 다음달 2일 지방 공약 이행과 관련해 시도지사협의회 회장단과 면담할 예정이다.

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