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칫솔 팔던 오랄비가 구강 컨설팅…빅데이터·3D, 비즈니스 모델 바꿀 것"
싱가포르 정부는 2015년 독립 50주년을 맞아 프로젝트 하나를 시작했다. 2018년까지 싱가포르를 닮은 가상의 도시를 짓는 것이 목표다. 이 가상 도시는 더 나은 삶을 찾기 위한 실험장이다. 인구가 늘고 새 도시 계획에 따라 일어날 각종 사회문제와 환경 변화를 미리 살펴볼 수 있다. 매년 9월 열리는 포뮬러원(F1) 경기대회 시즌에 일어날 차량 정체 상황도 예측할 수 있다. 버추얼 싱가포르로 명명된 이 도시의 설계 과정은 전적으로 컴퓨터에서 이뤄졌다. 도시를 설계하는 3차원(3D) 설계 소프트웨어는 프랑스 다쏘시스템이 제작했다.

다음달 열리는 스트롱코리아 포럼 기조연설자 버나드 샬레 다쏘시스템 회장(사진)은 서면 인터뷰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상품 경제보다는 경험 경제가 강조될 것”이라며 “3차원 그래픽 기술과 빅데이터가 결합해 삶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경제신문사와 미래창조과학부가 공동 주최하는 ‘스트롱코리아 포럼 2017’은 다음달 1일 서울 밀레니엄힐튼호텔에서 열린다.

샬레 회장은 1980년대부터 다쏘시스템의 혁신적인 연구개발(R&D)을 주도해왔다. 혁신적 R&D의 중요성을 일찍부터 간파한 그는 회사에 연구 전담 부서를 만들고 R&D 성과와 회사의 경영 전략을 접목한 활동을 이끌었다. 기계·전기전자공학을 아우르는 입체 설계 프로그램인 CATIA를 세계 최고 제품 개발 프로그램 지위에 올려놨다. 1995년에는 세계 최초로 철저히 디지털 방식으로 설계한 보잉777 제작을 주도하며 이름을 알렸다.

샬레 회장은 앞으로는 경험의 가치가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막대한 양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전개되는 4차 산업혁명은 삶에 즐거움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성가시게 할 수도 있다”며 “많은 기업이 사업 영역을 넘어 과학과 정보기술(IT)을 활용해 삶을 긍정적으로 바꿀 방법을 찾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유럽 내 호텔 헬스클럽의 95%를 장악한 전통 헬스기구 브랜드 테크노짐은 최근 모바일 앱(응용프로그램)을 새 사업 모델로 삼았다. 이 회사가 개발한 마이웰니스 앱은 사용자가 헬스기기를 사용한 기록을 저장했다가 언제 어디서든 맞춤형 운동관리 프로그램을 처방하는 서비스다. P&G의 구강브랜드 오랄비는 전동칫솔과 스마트폰을 연결해 잘못된 칫솔질을 교정하는 모바일 서비스를 내놨다.

그는 이 같은 변화의 중심에 3D 설계기술과 빅데이터가 있다고 강조했다. 3D 기술은 이전까지만 해도 항공기나 우주선, 무기 개발에 활용됐지만 이제는 일반 소비자가 쓰는 핸드백이나 신발, 옷에도 도입되고 있다. 샬레 회장은 “이전에는 자동차를 직접 벽에 부딪쳐 안전성을 검증했지만 이제는 컴퓨터 기술만으로도 다른 엔지니어와 소비자의 의견을 구해가며 성공 가능성이 큰 제품을 개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2012년 내놓은 ‘3D 익스피어리언스’도 그런 기술 중 하나다.

세계 각국은 각종 사회·환경 문제를 풀기 위해 국가보다는 규모가 작은 도시를 실험 무대에 올리고 있다. 그는 “빅데이터와 시각화 기술에 근거한 3D 기술은 과학적이면서 직관적인 소통과 의사 결정을 돕는 핵심 기술”이라며 “싱가포르처럼 스마트 도시를 구축하는 여러 나라와 도시들이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샬레 회장은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 방법만 봐도 성공할 기업과 그렇지 못한 기업을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근시안적인 기업들은 대부분 3D 기술이나 소프트웨어를 IT부서에서 제품을 설계하는 단순한 프로그램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며 “경영자가 소프트웨어 작동 방법을 이해할 필요는 없지만 제품 개발 원리를 이해하고 의사결정에 사용하는 도구로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샬레 회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산학연의 협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업은 필요한 인재를, 대학은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는 기회를 통해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낼 수 있다”며 “기업을 중심으로 양질의 교육 프로그램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람에 대한 투자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다쏘시스템은 매출의 30%를 R&D에 투자하고 있고 직원의 30%가 R&D에 참여하는 엔지니어”라며 “엔지니어의 지식과 경험이야말로 회사의 핵심 자산이라고 여겨 이들의 능력을 축적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 버나드 샬레 다쏘시스템 회장은

△1957년 프랑스 브리타니 출생
△프랑스 카샹 고등사범학교 졸업·기계공학 박사
△1983년 다쏘시스템 입사
△1986년 신기술 연구전략본부 설립
△1988년 전략연구개발본부장
△1993년 이사회 임원
△1995년 다쏘시스템 사장
△2002년 다쏘시스템 최고경영자(CEO)
△2005년 기사 작위 △2007년 레종도뇌르 훈장
△2009년 프랑스 테크놀로지 아카데미 회원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