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은행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일가 간의 ‘상호협력’ 관계가 세간의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맏딸 이방카 트럼프가 연결고리다.

파이낸셜타임스(FT)가 29일(현지시간)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김용 세계은행 총재는 지난 4월3일 백악관에서 이방카 트럼프를 만나 10억달러 규모 여성 기업가 지원 펀드 조성계획을 논의했다. 김 총재는 오는 7월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전까지 펀드를 구성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4월말 다른 회의에서 이방카 트럼프는 김 총재에게 아버지를 만나길 원하느냐고 묻고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로 그를 안내했다. 인프라 투자 계획을 논의하던 트럼프 대통령은 김 총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사흘 후 뒤 세계은행의 인프라 전문가들이 뉴욕에 가서 대통령 자문위원회 관계자들과 회의를 가졌다. ‘이방카 펀드’ 조성을 도와주고 자문 용역을 따낸 형국이다.

두 사람은 이후 적극 협력하는 관계다. 두 사람은 지난 4월 함께 여성의 경제적 지위 향상에 관한 칼럼을 FT에 기고했으며 지난 20일 트럼프 대통령이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했을 때도 동행해 펀드 관련 회의를 가졌다. 이방카 펀드는 총 2억달러 규모 종잣돈으로 조성되며, 이 중 절반은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이 댈 예정이라고 FT는 전했다. 이방카 트럼프는 페이스북에서 김 총재가 사우디에서 한 일을 칭찬하기도 했다.

하지만 세계은행 관계자들은 만약 중앙아시아의 어느 독재자 딸이 이런 펀드 조성에 협력해 달라고 요구했다면 내부에서 매우 부정적으로 다뤄졌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세계은행에서 15년간 근무한 조엘 헬먼 미국 조지타운대 외교학부 학장은 “미국 아닌 나라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굉장히 거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 여성 지원을 위한 미국의 각종 프로그램에 대한 지원을 끊고 있는 가운데 이방카 펀드만 홀로 지원을 받는 상황이 역설적이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김 총재가 이렇게 트럼프 일가 일에 발벗고 나서는 것은 트럼프 정부가 지난 3월 6억5000만달러 규모 세계은행 지원금을 끊겠다고 위협해 온 것과도 관련이 있다고 FT는 분석했다. 1944년 브레튼우즈 협약에 따라 개발도상국 지원을 위해 UN 산하에 설치된 세계은행은 돈을 주로 대는 미국이 총재를 임명하는 관행이 있으며 김 총재도 다트머스대 총장으로 재직하다 2012년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지명으로 현 자리에 올랐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