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프로젝트 시장도 '전(錢)의 전쟁'이다
1968년 10월20일 멕시코시티 올림픽 스타디움. 높이뛰기 경기를 보던 8만 관중의 입에서 탄성이 터졌다. 당시 다리를 엇갈려 옆으로 뛰거나 배 쪽으로 막대를 넘는 것을 당연시하던 높이뛰기에서 누운 채 등으로 넘는 선수 때문이었다. 무명의 21세 대학생 딕 포스베리는 전에 없던 플롭(배면뛰기)으로 224㎝를 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고등학교 시절 160㎝도 못 넘어 높이뛰기를 그만두려 했던 포스베리. 실의에 빠진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연습장 구석 착지매트였다. 그때까지 높이뛰기 경기장의 착지 장소는 대부분 모래바닥이었지만 안전을 위해 두툼한 착지매트가 도입되고 있었다. 모래가 아니라 매트라면 어깨와 목으로 착지해도 다칠 염려가 없다고 생각한 포스베리는 강점인 다리 힘을 최대한 활용해 등을 아래로 향한 채 뛰는 방식을 연마했다. 예정대로 멕시코 올림픽에선 이전 대회와 달리 착지매트를 도입했다. 다른 선수들은 매트 도입을 무시한 채 기존 방식만 고집했지만 포스베리는 매트의 안전성을 활용한 뛰기 방식으로 올림픽 신기록을 세웠다. 예고된 경기장 환경 변화를 간과한 실력자들은 착지 환경 변화를 꿰뚫고 적극 공략한 무명선수 앞에 무릎을 꿇었다.

환경 변화를 감지하고 최적의 방식을 모색해야 하는 것은 스포츠세계만이 아니다. 글로벌 프로젝트 시장에서도 시공 능력만 좋으면 수주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던 시대는 지났다. 글로벌 건설업체 간 기술 격차가 줄어든 상황에서 원가 절감을 통한 가격 경쟁력만으로는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 특히 프로젝트 대형화 추세가 맞물려 수주 기업들은 거액의 금융조달도 요구받고 있다. 시공 능력은 기본이고 수천 억원에 이르는 거액을 낮은 이자율로 빌릴 수 있어야 프로젝트를 따낼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런 ‘선금융 후발주’ 흐름에서 경쟁력 있는 외화자금 조달을 위한 정책금융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그중에서도 무역보험은 시중은행의 대출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국내외 상업은행이 지닌 풍부한 유동성을 안심하고 투자로 연결하는, ‘시장 친화적’이라는 장점이 있다. 또한 국내 시중은행이 해외 프로젝트에 참여할 경우 경제 규모에 비해 순위가 낮은 우리 금융시장에서 예대마진을 통한 사업모델을 대체할 새로운 먹거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우리 기업과 금융기관 모두가 효과적 정책 지원을 바탕으로 변화한 글로벌 프로젝트 시장의 장애물을 훌쩍 뛰어넘어 많은 성공사례를 만들기를 응원한다.

문재도 < 한국무역보험공사 사장 mjd00053@ksure.or.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