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과 시각] '1주1표제' 원칙을 바로 세우자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임과 동시에 자본주의 국가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각각의 체제를 지탱하는 원칙이 있는데 민주주의의 경우 ‘1인1표제’ 원칙, 자본주의의 경우 ‘1주1표제’ 원칙이다. 이 1인1표제 원칙에 따라 우리는 이번에 새 대통령을 선출했으며 현 대통령에게 표를 던지지 않은 유권자들도 이 원칙에 따라 그 결과에 승복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자본주의 국가에 산다고들 하면서 ‘1주1표제’ 원칙은 아무렇지도 않게 무시하는 것인가. 국가든, 회사든, 가정이든 원칙이 존중되지 않는다면 그 조직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혹자는 미국의 경우 차등의결권 제도가 있어서 1주1표제 원칙이 이미 무너진 게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사실 미국에는 차등의결권이 광범위하게 도입돼 있다. 예컨대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벅셔해서웨이 주식은 A주식이 B주식의 1500배에 달하는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또 마크 저커버그가 이끄는 페이스북은 B주식 의결권이 A주식 의결권의 10배에 이른다.

그러면 미국은 1주1표제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나라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예컨대 A주식이 B주식 의결권의 10배를 행사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의결권에 관한 한 B주식은 A주식을 10분의 1로 분할한 주식에 다름 아닌 것이며, 그런 의결권 차이를 반영해 시장에서 가격이 결정될 뿐이다. 결국 차등의결권이란 의결권에 관한 더욱 다양한 형태의 주식을 투자자에게 선보이는 것일 뿐이고 그런 차이를 반영한 가격이 매겨지는 것일 뿐 이미 동등한 조건으로 발행된 주식들에 대해서는 1주1표제 의결권의 행사를 인위적으로 막는 어떤 제도도 미국에서는 용납되지 않는다.

한국은 어떤가. 우리나라 재벌들은 2~3%에 불과한 지분으로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다. 소수지분으로 경영권을 행사하는 자체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미국도 지분이 거의 없는 전문경영인들이 경영을 위탁받아 회사를 경영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요한 차이는 미국은 대주주를 위시한 다른 투자자들이 이사회를 통해 경영인의 경영권을 감시·감독하고 있다는 점이다. 반면 한국은 이사회를 통한 경영감시가 상대적으로 철저하지 못하다는 지적을 많이 받아 왔다.

한번 따져 보자. 97~98% 지분을 가진 주주들이 오너일가에 경영을 위탁하되 불법 또는 탈법이 있는지를 이사회를 통해 감시·감독하지 않는다면 왜 주주로 남아 있어야 하겠는가. 경제개발 초기 정부의 오너일가 경영권 보호는 오너일가로 하여금 주주의 견제가 전무한 이사회 구성을 당연시하는 비상식적 전통을 만들었고 이런 견제 없는 경영이 무리한 대물림까지 이어지는 등 물의가 빚어지자 정치권 또한 원칙을 벗어난 입법으로 대응하게 됐다.

예컨대 오너 등 특수관계인 지분의 경우 의결권을 3%까지만 인정하는, 그야말로 1주1표제 원칙을 무너뜨리는 세계 유일한 입법이 등장하는가 하면 최근엔 의결권이 전혀 없는 노조가 이사회 선임권을 가지는 것을 추진하는 등 1주1표제의 원칙은 완전히 실종돼 가는 느낌이다. 이런 예는 원칙이 한 번 무너지면 그 뒤로는 얼마나 무원칙적으로 변해가는지에 대한 실증 사례이기도 하다.

이번 정부에는 대기업에 대해 강성기조를 지닌 이들이 입각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직접 대기업을 때리는 게 능사는 아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이해관계가 첨예한 주주들이 직접 이사회를 통해 경영을 감시토록 하는 자본주의 원칙을 실천하는 것이다. 이것이 작게는 한국 증시의 저평가를 해소하는 방안이며 크게는 한국의 금융산업을 한 단계 도약시키는 길이라 믿는다.

하태형 < 전 현대경제연구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