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금만 앞세운 벤처정책은 시장 자생력을 떨어뜨리며, 벤처 생태계를 살려내기 위해서는 정책자금 지원펀드 수를 3분의 1로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내 대표 민간 싱크탱크 FROM100과 한국경제신문사가 공동으로 기획해서 지난 26일 개최한 ‘새 정부에 바란다’ 두 번째 토론회에서다. ‘4차 산업혁명 전략 이렇게 짜야 한다’(벤처 활성화와 정보기술·금융산업)를 주제로 한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양적인 지원 확대에만 매몰돼선 자발적 투자와 고용 확대를 이끌어내기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이기대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이사는 “정책자금 지원펀드 숫자를 정부의 벤처사업 성과로 인식하는 경향 때문에 국내 벤처시장이 ‘고인 물’이 되고 있다”며 “정책자금 성격의 펀드 수를 현재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이고 경쟁력 있는 기업에 투자금액을 늘리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는 중소벤처기업부를 확대 신설하는 등 벤처시장 활성화를 우선 정책과제로 제시했다. 하지만 자칫 지원금액이나 대상 기업 수만 앞세우다가는 오히려 벤처시장 자생력을 떨어뜨릴 것이라는 경고다.

“정부 지원이 아니라 시장 수요가 있는 곳에 창업이 이뤄지게 해야 한다”(정유신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는 지적도 나왔다. 혁신적 사업 모델보다는 정부 입맛에 맞는 사업에 집중된 벤처업계 현실을 꼬집은 것이다. “정책자금에 기댄 ‘좀비 벤처’들이 사라지지 않으면서 적정 수익성이 확보되지 않는다”는 한순구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의 말도 같은 맥락이다.

국내 벤처기업 수가 올 들어 3만3000개를 넘어섰다. 창업 절차와 진입 규제가 완화된 결과, 10년 사이에 두 배 넘게 많아진 것이다. 하지만 창업 후 3년을 넘기는 기업은 38%에 불과하다고 한다. 스웨덴(75%), 영국(59%), 미국(58%), 프랑스(54%), 독일(52%) 등에 크게 뒤진다. 벤처 지원 정책을 ‘선택과 집중’보다는 물량 위주 ‘퍼주기’에 치중한 결과다. 정부는 “명확한 타깃 없이 불어난 정책자금 탓에 스타트업계가 변비에 걸렸다”는 업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