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우리들의 인생학교’
tvN ‘우리들의 인생학교’
스트레스 견디기, 타인 이해하기, 새로운 친구 사귀기, 혼자 여행하기…. 어른이 되면 쉽게 할 수 있는 일들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어른인 당신, 이 가운데 진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이 질문을 받고 나면 문득 깨달을 것이다. 어른인데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걸. 아니, 오히려 대부분 어른이 서툴다는 사실을 말이다. 나이가 들면 당연히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들 앞에서 어른인 우리는 여전히 두렵고 불안하다.

그래서일까. 요즘 어른들 사이에선 어릴 때 보던 만화 ‘보노보노’가 화제다. 어른들은 소심하고 걱정 많은 보노보노에게서 도전도, 관계 맺기도 두려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이런 얘기를 담은 김신회 작가의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는 큰 인기를 얻으며 이달 교보문고에서 종합 베스트셀러 2위에 올랐다. 어른이 되는 법을 다룬 방송도 있다. tvN이 지난 14일 첫 방송을 시작한 예능 ‘우리들의 인생학교’다. 여기엔 스트레스를 이기는 법부터 혼자 여행하는 법까지 적은 카드가 벽에 붙어 있는 ‘인생학교’가 나온다. 패널들은 이 모든 것을 하나씩 배우기 시작한다. 진짜 어른이 되기 위해.

나이가 들었지만 아직 서툴기만 한 ‘어른 아이’들을 위한 가이드가 잇달아 나오고 있다. 인생의 아마추어지만 사회에서는 프로이길 강요받는 어른,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프로가 될 줄 알았지만 그렇지 못한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는 어른. 책과 방송은 그들이 스스로를 다독이고 다시 진정한 사회화에 나설 수 있도록 돕는 학교가 되고 있다.

‘어른’은 문화계의 주요 아이템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 단어를 검색하면 2만1600여 권에 달하는 서적이 나온다. ‘천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 ‘어른인 척’ 등 책 제목만 봐도 어른들의 고민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다. 방송가에선 tvN 예능 ‘어쩌다 어른’이 2년 동안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실제 어른들을 위한 학교도 생겼다. ‘우리들의 인생학교’에 나온 ‘인생학교’는 스위스 소설가 알랭 드 보통이 2015년 서울에 세운 분교로, 많은 어른이 이곳을 거쳐갔다.

어른들은 왜 어른이 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됐을까.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이상적인 어른의 모습은 하나였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의사나 변호사가 되고, 화목한 가정을 이룬 아버지 혹은 어머니다. 하지만 이제 그 신화는 깨지고 있다. 노력만 하면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은 저성장 시대에선 소수에 불과하다. 직장 상사에게 치이고 과다한 업무에 시달리는 직장인이 대부분이다. 이마저 힘든 게 현실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감정을 억누르고 희생하는 것을 더 이상 어른의 미덕으로 여기지 않는다. 자신을 아끼고 내면을 당당히 드러내는 사람이 멋있는 어른이라고 생각한다. 변화는 평균수명이 길어진 데서 온 측면도 있다. 과거엔 40대만 돼도 유혹을 참는 ‘불혹(不惑)’의 경지에 이르고, 50대엔 하늘의 명을 깨닫는 ‘지천명(知天命)’의 덕을 쌓는 게 가능해 보였다. 그 나이대면 이미 인생의 후반기에 접어든 것이기에 사람들은 이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70~80년, 혹은 그보다 더 긴 인생에선 얘기가 달라진다.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그저 도를 닦는 심정으로 살아갈 순 없다.

콘텐츠는 이제 이들에게 강요된 모습의 어른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어른이 되는 길을 제시한다. 주된 방식은 아이였을 때의 기억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는 만화 ‘보노보노’를, ‘우리들의 인생학교’는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를 통해 성숙해지는 법을 꺼내 든다. 결국 우린 어린 시절 이미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웠던 것이다. 다만 잊고 살아왔을 뿐.

당찬 야옹이 형이 보노보노에게 하는 말도 어쩌면 어른들에게 건네는 조언이 아닐까. “살아가는 건 점점 망가지는 일이야. 아무도 그걸 막지 못해. 하지만 쓸데없는 것 때문에 불행해진다면 그 불행 역시 쓸데없는 거란 걸 난 알아. 그렇다면 그게 또 행복이겠지.” 불행한 어른인 당신은 이미 행복해지는 법을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희경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