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봉만 수십만달러…월가-실리콘밸리 '인재전쟁'
미국 뉴욕 월가의 투자회사와 실리콘밸리 정보기술(IT) 기업들이 IT 인재를 잡기 위해 ‘전쟁’을 벌이고 있다. 컴퓨터 알고리즘에 기반한 퀀트 투자가 급증하는 가운데 헤지펀드들이 더 많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필요로 해서다.

월가 투자회사들은 구글 페이스북 등 IT기업과 우버 에어비앤비 등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선호하는 기술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수십만달러의 연봉과 멋진 사무실, 초호화 여행권 등 각종 특전을 제공하고 있다.

◆치열한 경쟁에 치솟는 몸값

‘오늘날 월가 트레이딩룸의 상징적 인물은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딴 이가 아니다. 카네기멜론대를 나온 컴퓨터공학 전공 박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5일 수학적 모델을 이용한 계량분석 기법을 통해 투자하는 퀀트 투자가 부상하면서 퀀트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의 몸값이 치솟고 있다고 보도했다.

세계 최대 퀀트·헤지펀드 운용사인 맨그룹의 루크 엘리스 최고경영자(CEO)는 “구글은 세상의 모든 데이터 과학자를 훑어가려는 것 같다”며 “구글은 우리보다 돈이 많아 경쟁하기 버겁다”고 말했다. 맨그룹은 최근 영국 옥스퍼드대에 맨그룹 퀀트리서치랩 이름으로 수백만파운드를 기부했다. 향후 직업을 찾아나설 학생들이 맨그룹을 알고, 퀀트를 미리 공부하기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헤지펀드든 IT기업이든 비슷한 인재들을 찾고 있다. 사업에서 새 기회를 찾아줄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인재다. 뉴욕의 한 금융회사에서 퀀트 애널리스트로 일하는 니나 쿠클리소바(27)는 “매주 세 곳에서 다섯 곳까지 다른 금융사나 기술회사에서 일하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는다”고 말했다.

IT기업의 인재 싹쓸이에 맞서기 위해 월가 금융사들은 멋진 사무실을 제공하고 있다. 300억달러의 자산을 운용하는 영국 윈스턴그룹은 지난해 IT 인재들이 선호하는 샌프란시스코 금융가에 머신러닝을 연구하는 연구소를 마련했다.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의 불확실성과 확실히 대비되도록 엄청난 연봉도 준다.

채용회사에 따르면 박사학위가 있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가 헤지펀드에 입사하면 보통 첫해 연봉 10만달러와 보너스로 연봉의 50~100%를 받는다. 명문대를 나오거나 특별한 기술이 있다면 그보다 3~4배 더 받을 수 있다.

다른 특전도 많다. 미국 헤지펀드 시타델은 직원에게 최고 인기 뮤지컬 ‘해밀턴’을 볼 수 있도록 비행기표와 좌석을 제공하기로 했다. 퀀트 전문회사인 투시그마는 신입 직원에게 무료 골프 레슨, 창립자와의 저녁식사 기회 등을 준다. 케빈 아렌슨 스텐햄애셋매니지먼트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월가 회사와 실리콘밸리 기업 간 경쟁은 군비 경쟁과 같다”고 말했다.

◆월가를 지배하는 퀀트 투자

월가가 IT 인재 확보에 혈안인 것은 퀀트 투자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탭그룹에 따르면 전체 주식 거래량 중 퀀트펀드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3년 13.6%에서 올해 27.1%로 치솟았다. 지난해 투자자들은 전체 헤지펀드에서 830억달러를 회수했지만 퀀트펀드에는 130억달러를 더 집어넣었다.

1분기 말 퀀트펀드 운용자산은 9320억달러로 전체 헤지펀드의 30%를 넘었다. 2009년 4080억달러에서 두 배 넘게 증가했다. 낮은 수익률과 고액 수수료 논란으로 헤지펀드가 외면받고 있지만 퀀트펀드는 정반대라는 게 WSJ의 설명이다.

퀀트펀드가 각광받는 것은 무엇보다 투자 수익률이 좋아서다. 지난 5년간 퀀트펀드는 연평균 5.1%의 수익률을 거뒀다. 같은 기간 헤지펀드는 4.3% 수익률에 그쳤다. 올해 1분기에도 퀀트펀드는 전체 헤지펀드(2.5%)보다 높은 3%가량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퀀트펀드는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기술을 업고 더 발전하고 있다. 세계 주요 경제 및 금융 데이터에 실시간 접근하는 게 가능해지면서 거래 적중률이 높아지고 있다. WSJ는 “과거 수십 년 동안 투자자들은 데이터 중심의 거래가 금융시장을 지배할 때를 상상했다”며 “마침내 그날이 도래했다”고 전했다.

■ 퀀트

quantitative(계량적, 측정할 수 있는)와 analyst(분석가)의 합성어. 수학·통계에 기반해 투자모델을 만들거나 금융시장 변화를 예측하는 사람을 말한다. 이들은 컴퓨터 알고리즘을 설계해 투자에 활용한다.

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