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의 첫 공판이 시작됐다. ‘세기의 재판’이라는 평이 있는 만큼 양쪽은 치열한 법리공방을 벌이고 있다. 그 과정에서 일반인에게는 낯선 법률 용어와 재판절차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노무현 정부 도입한 '진술조서 거부'…박근혜측이 활용
◆‘공소장 일본주의’ 등 생소한 용어 속출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 심리로 지난 23일 열린 첫 공판에서 박 전 대통령 측 유영하 변호사는 검찰이 삼성 뇌물과 관련해 제출한 153명의 진술조서를 증거로 사용하는 데 동의하지 않았다. “삼성 뇌물 혐의와 관련해서 최순실 씨와 공모 자체를 한 적이 없다”며 진술조서를 믿을 수 없다고 선언한 셈이다.

검찰조서는 피고인이 동의하지 않으면 재판에서 증거로 채택할 수 없다. 노무현 정부 시절 공판중심주의를 도입하면서 형사소송법이 개정됐기 때문이다. 검찰의 무리한 기소를 방지하고 엄정한 재판을 보장하기 위한 취지다. 다만 진술자가 사망하거나 믿을 만하다고 재판부가 판단할 경우 증거로 채택할 수 있다. 부장검사 출신의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구속으로 이끈 진술조서 등이 박 전 대통령의 무혐의 주장에 유리할 게 없을 거란 판단을 내림과 동시에 재판 준비에 필요한 시간을 벌기 위해서”라고 진단했다.

이에 따라 진술조서를 검찰이 증거로 사용하려면 관련 진술자들을 일일이 법정에 불러 증인 신문을 해야 한다. 증인만 수백 명이 법정에 출두할 가능성이 높아져 재판은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이란 전망이다.

◆박근혜측-검찰 “상대방 법리 허점 찾아라”

변호인단은 ‘공소장 일본주의’ 문제도 제기했다. 공소장 일본주의는 검사가 피고인을 기소할 때 공소장 외 다른 서류를 첨부해 재판부에 예단을 생기게 해선 안 된다는 원칙을 말한다. 하지만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 측의 문제제기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직 헌법과 법리에 따라 공정하게 재판을 진행할 것이기 때문에 공소장 일본주의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동시에 박 전 대통령 측은 이중기소 문제를 제기했다. 삼성의 △미르·K스포츠재단 204억원 출연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16억2800만원 후원 △롯데의 K스포츠재단 70억원 추가 출연 등 세 가지 행위를 뇌물수수와 직권남용 혐의로 복수 기소한 점을 지적한 것이다. 동일한 행위에 대해 두 개 이상의 범죄혐의를 적용한 ‘상상적 경합’으로, 이는 헌법이 보장하는 이중처벌금지 원칙에 어긋난다는 논리였다. 하지만 재판부는 “대법원 판례에 따라 ‘상상적 경합’이라고 보더라도 먼저 기소된 공소장에 누락된 것을 추가 보충하는 취지로서 공소장 변경이 이뤄진 것으로 보고 공소를 기각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첫 재판에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출석하지 않은 것도 궁금증을 낳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특검이 아니라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기소한 재판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 부장검사는 “윤 지검장이 참석할 수도 있었지만 지검장으로 승진해 재판에 배석하는 것이 ‘급’이 맞지 않는다는 내부 의견도 있었다”고 말했다.

향후 검찰과 특별수사팀의 역할 분담도 관심사다. 특검이 기소한 최씨 재판과 검찰이 맡은 박 전 대통령의 재판이 병합돼 한꺼번에 진행되기 때문이다. 서울중앙지검 관계자는 “아직 정해진 것은 없지만 공판 내용에 따라 서로 잘하는 분야를 맡아 역할을 나눌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상엽/김주완 기자 l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