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실리콘밸리 사람들
미국 샌프란시스코 근교의 한적한 농장지대였던 실리콘밸리. 이곳이 세계 소프트웨어산업 중심지로 변신한 것은 1950년대다. 스탠퍼드대 연구단지를 효시로 첨단기술 전초기지가 됐다. 명칭은 반도체 재료인 실리콘(silicon)과 완만한 계곡(valley)을 합성한 조어(造語)다. 창업천국으로 불리는 이곳에선 기업가치 10억달러(약 1조1000억원) 이상의 ‘유니콘 회사’가 1주일에 한 개꼴로 탄생한다.

전문가들은 실리콘밸리의 성공 요인을 다섯 가지로 꼽는다. 혁신에 가치를 두고 위험을 감수하는 모험정신, 전 세계에서 모여드는 유능한 인재, 벤처캐피털 투자자들, UC버클리와 스탠퍼드대 등 우수한 교육기관, 초정밀산업에 적합한 기후와 환경이 그것이다. 여기에 다섯 가지 인재 요건을 더하기도 한다. 탁월한 실력과 유연한 사고, 인종·나이를 따지지 않는 다양성, 새 제품에 열광하는 얼리 어답터, 창업자 존중정신이 합쳐졌다는 것이다.

실리콘밸리 사람들의 특징을 꼽으라면 개방성과 확장성을 들 수 있다. 이곳의 이민자 비중은 작년 말 현재 37.4%에 이른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는 시리아 이민자의 아들이다.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 마크 저커버그는 독일·폴란드 혈통이고 마이크로소프트 CEO 사티아 나델라는 인도 출신이다. 인종도 아시아(32%)와 히스패닉(26%)이 많다.

이들은 뭘 해도 깊이 몰입한다. 특정 분야에 열중하는 ‘긱(geek) 문화’가 여기서 싹텄다. 단순한 ‘괴짜’나 별난 사람이 아니라 취미든 일이든 미친듯이 하는 ‘열정적인 사람’들. 이들은 ‘슈퍼맨’ ‘배트맨’ ‘반지의 제왕’에 열광하고, 공상소설과 SF영화, ‘슈퍼 마리오’ ‘포켓몬’ 캐릭터를 광적으로 좋아한다. 이런 몰입과 상상의 힘이 실리콘밸리를 ‘인류 미래를 예측하는 실험장’으로 키웠다.

애플 공동창업자 스티브 워즈니악은 만화광이다. 지난해부터 ‘코믹콘(만화 관련 작품과 대중문화를 포괄하는 박람회)’도 열고 있다. 그는“SF의 무한한 아이디어는 늘 우리를 흥분시킨다”고 했다. 이런 태도는 비즈니스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실리콘밸리 사람들은 제품이나 서비스의 가치를 따질 때 확장성을 가장 중시한다. 인터넷 시대에는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시스템 등의 수요 확장 능력에 성패가 달렸기 때문이다.

1주일만 휴가를 다녀와도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숨가쁘게 돌아가는 첨단기술의 허브, 전 세계 창업가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스타트업의 산실. 이곳을 흉내 낸 한국의 테헤란밸리에선 언제쯤 10억달러짜리 유니콘 기업이 나올까.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