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사드 외교, '허니문' 이후가 문제다
중국에서 생활하는 외국인 중 상당수는 ‘중국인은 체면을 중시한다’는 고정관념에 의문을 제기한다. 중국에서 부동산 임대차 계약이라도 한번 해본 사람들은 대부분 인정한다. 중국인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체면’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친다는 것을. 대다수 중국인 집주인은 부동산 임대기간 만료 후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기 위해 상상을 초월하는 트집거리를 만들어낸다. 외국 기업과의 협상이나 외국 정부와의 외교는 어떻겠나.

최근 몇 개월 새 북한과 중국 간 관계는 과거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됐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중국이 미국과 ‘찰떡 공조’ 체제를 가동한 이후 ‘혈맹’이라는 북·중 정부는 관영언론을 동원해 낯뜨거운 비방전을 전개했다.

중국인의 민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베이징에서 살고 있는 한 중국인 친구는 “영원한 친구는 없다. 영원한 이익만 있을 뿐”이라고 했다. 그는 “과거에는 북한과 혈맹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국에 이익이었지만 지금의 북한은 중국의 이익을 오히려 해치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민감한 시기에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에 특사를 파견해 ‘4강(强) 외교’를 펼쳤다. 어느 한 곳 중요하지 않은 나라가 없지만 국민이 가장 큰 관심을 보인 곳은 중국이다. 새 정부 출범을 계기로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이 풀리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다.

현재까지 겉으로 드러난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문 대통령에게 보낸 축전과 전화통화를 통해 한·중 관계 개선을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우회적이지만 강력하게 전달했다.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국제협력 정상포럼에 초청한 한국 대표단과 대통령 특사인 이해찬 전 총리도 섭섭지 않게 환대했다.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은 이 특사가 “사드 보복조치를 조속히 완화해주길 희망한다”고 요청하자 “한국인의 우려를 잘 알고 있으며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 노력하겠다”고 답변했다. 사드 보복조치로 직격탄을 맞은 한국 여행업계와 문화콘텐츠업계에선 ‘조만간 중국 정부가 사드 보복조치를 거둬들일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다.

반면 지나친 기대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많다. 베이징의 한 외교소식통은 “이해타산에 밝은 중국이 뚜렷한 반대급부 없이 사드 보복조치를 푸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중국이 관계 회복을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발신한 것은 문재인 정부에 일종의 ‘허니문’ 기간을 준 것이자, 나름의 전략적 의도가 담긴 것으로 봐야 한다고 그는 풀이했다. 사드 갈등 해결을 위한 양국 간 협상이 본격화하면 중국은 사드 보복조치 철회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급하라고 한국에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걱정되는 건 갈라질 대로 갈라져 있는 한국의 여론지형이다. 한국 내 진보진영은 사드 배치에 찬성하면 ‘친미(親美) 사대주의자’로 낙인찍고, 보수진영은 사드 배치에 반대하면 ‘종북세력’ 또는 ‘안보불안세력’으로 몰아붙인다.

사드 문제에 철저히 이해타산적으로 접근하는 중국에 분열된 진영 논리로 대응할 수 있을까. ‘이념의 안경’을 벗고 국가 이익을 중심으로 한 응집력을 분출해야 한국 정부의 사드외교도 수월할 수 있다.

베이징=김동윤 특파원 oasis9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