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영 대표 "억대 연봉 버리고 창업…기술로 투자문화 바꿀 것"
“해외 투자자들 사이에선 분산투자가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국내 개인투자자에겐 생소하잖아요. 이런 투자문화를 기술로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정인영 디셈버앤컴퍼니 대표(38·사진)는 23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사무실에서 “손쉽게 해외시장에 투자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고 싶어 창업했다”고 말했다.

그는 서울대 전기공학부를 졸업한 뒤 기업에서 투자전략 분야 경력을 쌓았다. 엔씨소프트에서 투자경영실장을 맡기도 했다. 미래가 보장된 안정적인 직장과 억대 연봉을 포기하고 인공지능(AI) 기반의 로보어드바이저 업체인 디셈버앤컴퍼니를 세운 건 4년 전이다. 정 대표는 금융과 정보기술(IT) 분야를 융합하면 길이 보일 것으로 확신했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은 회사를 나가겠다는 정 대표의 사업계획과 비전을 듣고 오히려 힘을 실어줬다. 디셈버앤컴퍼니가 창업부터 시장의 주목을 받은 것도 김 사장이 개인적으로 투자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정 대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에서 시장이 급격히 커진 로보어드바이저가 국내 개인들의 ‘몰빵’ 투자문화를 바꾸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디셈버앤컴퍼니가 개발한 로보어드바이저 엔진인 ‘아이작’은 상장지수펀드(ETF)와 상장지수증권(ETN)을 통해 다양한 국가와 자산에 분산투자하도록 포트폴리오를 짜고 끊임없이 비중을 조정한다. 목표 수익률은 연 5~7%다.

‘아이작’은 정 대표의 핵심 투자 철학인 ‘분산투자’와 ‘편리한 투자’를 담고 있다. 과거의 금융데이터를 학습해 스스로 투자 방식을 결정하고 안정적으로 수익률을 올릴 수 있도록 여러 자산을 사고팔게 설계됐다. 그는 “과거에도 분산투자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투자정석으로 자리 잡았다”며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큰 손실을 입지 않은 투자자들은 빠짐없이 분산투자 원칙을 지키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투자도 편리하다. 하루종일 투자한 주식의 등락을 지켜보거나 오랜 시간 공부하는 것은 개인투자자에게 쉽지 않은 일이다. 이처럼 투자에 오랜 시간을 쏟기 어려운 투자자들도 로보어드바이저를 통하면 손쉽게 중장기 투자에 나설 수 있다. 정 대표는 “로보어드바이저의 장점은 개인투자자들이 손쉽게 분산투자를 할 수 있다는 것”이라며 “매일 새로운 데이터를 학습하는 투자 엔진이 개인별로 포트폴리오를 재조정하고 스스로 주식을 매매한다”고 말했다.

한계를 느낀 적은 없었는지 물었다. 정 대표는 “로보어드바이저가 국내에 선보인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막혀있는 규제가 많다”며 “국내에선 아직 비대면으로 상품을 판매해야 하기 때문에 기존 금융사의 고객 인프라를 활용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펀드매니저가 없어 인건비를 절감할 수 있는데도 기존 증권사를 통해 상품을 판매해야 하기 때문에 수수료가 높아진다는 얘기다.

나수지 기자 suj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