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영식의 논점과 관점] 한국당, '보수 본류'라 할 수 있나
보수주의가 일목요연한 ‘이론’을 갖고 탄생한 것은 아니다. 보수의 가치는 역사의 흐름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삶과 문명을 통해 얻어낸 결과물이다. 이 때문에 학자들은 진보가 연역적이라면, 보수는 귀납적이라고 규정한다.

보수주의를 정치이념화하는 데 기초를 닦은 사람은 영국의 정치사상가 에드먼드 버크다. 버크는 인간의 합리적 능력은 제한돼 있고, 사회는 이성이 아니라 도덕·관습에 의해 재생산되며, 문명의 진보는 사회 안정을 통해 가능하다고 봤다. 그는 이런 관점에서 프랑스 혁명을 비판하면서 과도한 이성과 합리성은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혁명 등 급격한 방법을 통해 사회가 바뀔 것으로 보지 않고, 사회의 자연스러운 운영질서에 의해 보존과 변화를 조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신념은 영국 보수당의 이념적 바탕이 됐다.

자기책임·법치·작은정부 등 존중

고전적 보수주의는 20세기 하이에크, 프리드먼 등에 의해 자유시장 경제를 옹호하는 ‘신자유주의적 보수주의’로 이어졌다. 신보수주의는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 시대에 꽃을 피웠다. 마이클 하워드 영국 보수당 대표는 2004년 당 강령을 풀이한 16개 항목의 보수주의자 신조를 발표해 주목을 받았다. ‘누군가의 가난이 다른 사람이 부자이기 때문이라고 믿지 않는다’ ‘국민은 지나친 간섭과 통제를 받지 않을 때 가장 행복하다’ ‘국민은 커야 하고 정부는 작아야 한다’ 등이다.

보수의 가치는 이렇게 200년 넘게 진화를 거듭하며 면면히 이어져 왔다. 핵심 가치를 요약하자면 자기 책임과 절제 있는 권리 행사, 원칙과 법치, 작은 정부, 자유로운 경제 활동, 사유 재산권 보장, 통화 가치 안정 등이다.

19대 대통령 선거 참패로 한국의 보수 정당이 위기를 맞았다. ‘보수의 본류’라고 자임하는 자유한국당은 지지율이 8%대까지 떨어졌다. 대선에서 1위와 역대 최대인 557만 표 차이로 패배하고도 반성은커녕 패배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보려는 노력조차 안 한다. 그 흔한 백서 하나 내지 않고, 워크숍을 하자는 사람도 없다. 7월3일 예정된 대표 경선을 앞두고 친박(친박근혜)계와 비박 간 쌈박질만 요란하다.

반성도 않고 책임지지도 않아

한국당이 보수의 가치를 존중하고 발전시키는 데 힘을 기울였는지도 의문이다. 표를 얻는 데 급급해 보수의 기본 가치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외면했던 게 다반사였다. 새누리당 시절인 2012년 대선 때 야당이 무색할 정도로 경제민주화 구호를 외친 게 단적인 예다.

반성하지도 책임지지도 않고, 무능하기까지 한 보수의 재건은 요원해 보인다. 한국당이 문재인 정부의 잘못에 따른 반사이익으로 내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에서 기회를 노린다면 큰 오산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집권 정당으로서 체질을 강화하기 위한 ‘100년 정당·100일 플랜’ 가동에 이미 들어갔다. 여권엔 김부겸, 박원순, 안희정, 이재명 등 잠재적 대선 주자들도 즐비하다.

그러나 진보 쪽으로 크게 기울어진 정치 지형은 나라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적절한 견제를 통해 집권 세력에 건강한 긴장감을 불어넣기 위해서도 보수정당이 다시 일어서야 한다. 대선 패배 뒤 미국에 간 홍준표 전 한국당 후보는 “귀국하면 신보수주의 이념을 중심으로 당을 새롭게 하겠다”고 했다. 한국당이 이번엔 보수의 가치를 제대로 정립·실천해 명실상부한 ‘한국판 보수당’으로 탈바꿈하길 기대해 본다.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