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화 유엔 사무총장 정책특보가 문재인 정부의 첫 외교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데 대해 ‘파격·깜짝발탁’이란 평가가 나온다.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하면 외교부 첫 여성 장관이 되는 데다, 외교부의 순혈주의를 뚫고 비(非)외무고시 출신이 발탁됐다는 점에서 ‘신선한 인사’라는 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공약한 ‘5대 비리 관련자 고위 공직 배제’ 원칙을 스스로 무너뜨린 점은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문 대통령은 후보시절 병역기피, 부동산 투기, 세금 탈루, 위장 전입, 논문 표절 등을 ‘5대 비리’로 규정하고 이 가운데 한 가지라도 해당하는 사람은 고위 공직에 기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었다. 미국에서 태어난 강 후보자의 큰딸은 2000년 한국의 고등학교로 전학 오면서 친척집으로 위장 전입했다. 청와대는 검증 과정에서 이런 사실을 파악했다며 관련 내용을 선제적으로 공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 후보자를 발탁한 것에 대해 “적임자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과거 고도성장기에는 위장전입 등이 큰 문제의식 없이 행해졌지만, 지금은 잣대가 달라졌다. ‘흠결이 있어도 실력이 있으면 그만’이라고 해서 넘어가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렇지만 ‘5대 비리 관련자 배제’ 원칙을 다 지키다 보면 흠집 없고 능력 있는 인사를 고르는 데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문 대통령도 이런 점 때문에 강 후보자를 최종 낙점하기까지 많은 고심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도자의 말은 천금 같아야 한다. 심사숙고해서 해야 하고, 한 번 원칙을 정했으면 지켜야 한다. 그것도 새 정부 초반부터 공약을 파기하는 것이라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정부를 어떻게 신뢰할 수 있겠는가. 강 후보자가 외교 위기를 해결해 나갈 적임자라면 발탁 못 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다만 공약을 지킬 수 없게 됐다면 현실적인 어려움을 보다 상세하게 설명해야 하지 않을까. “위장전입 사실을 밝히는 것은 주요 검증 사안에 대해 어떻게 판단했는지 투명하게 발표하자는 대통령의 의지였다”는 청와대 인사수석의 해명만으로 은근슬쩍 넘어가려 해선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