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나스닥 건물에 온라인 증권사인 로빈후드의 월스트리트 입성을 축하하는 옥외광고가 설치됐다. 미국에서 로빈후드를 이용하는 주식 투자자는 200만 명에 달한다. 로빈후드 제공
미국 뉴욕 나스닥 건물에 온라인 증권사인 로빈후드의 월스트리트 입성을 축하하는 옥외광고가 설치됐다. 미국에서 로빈후드를 이용하는 주식 투자자는 200만 명에 달한다. 로빈후드 제공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팰로앨토는 ‘실리콘밸리의 심장’으로 불린다. 인구가 7만 명에 불과한 소도시지만, 기업 가치가 10억달러가 넘는 대형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가리키는 ‘유니콘 기업’이 즐비하다. 시내 중심가에서 걸어서 30분 이내에 찾아갈 수 있는 유니콘 기업만 30여 곳에 달한다. 이곳엔 갓 창업한 회사를 글로벌 기업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는 인프라가 두루 갖춰져 있다. 명문 스탠퍼드대가 지척인 데다 자금줄을 쥐고 있는 글로벌 벤처캐피털(VC), 스타트업의 멘토 역할을 하는 액셀러레이터 등이 도시 곳곳에 포진해 있다.

◆‘게임 체인저’들에 후한 베팅

팰로앨토 지역 VC들은 산업의 룰을 바꾸는 ‘게임 체인저’ 성격의 스타트업을 선호한다. 업계에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기업에 투자해야 인수합병(M&A) 등으로 투자금을 회수하기 쉽다고 보는 것이다. 이익보다 사업모델의 참신성을 중시하는 것도 이 지역 VC들의 공통된 특징으로 꼽힌다. 지난달 DST글로벌, 스라이브캐피털 등으로부터 자금 조달에 성공해 13억달러(약 1조4500억원)의 기업가치를 인정받은 온라인 증권사 로빈후드가 게임 체인저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이 회사의 공동 창업자는 스탠퍼드대 동창인 블라디미르 테네브와 바이주 프라풀쿠마 바트다. 사업모델은 ‘무료 주식거래’다. 종목당 10달러 안팎에 달하던 주식 거래수수료를 아예 받지 않는 방법으로 창업 2년여 만에 200만 명의 고객을 확보했다. 지점과 애널리스트 조직을 두지 않으며 투자자의 예탁금에서 나오는 이자만으로도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로빈후드는 미국 증권업계의 수수료 인하 경쟁을 이끌고 있다. 현지 인터넷 은행인 찰스슈와브는 8달러95센트였던 온라인 주식거래 수수료를 4달러95센트까지 떨어뜨렸다.

클로버헬스케어도 시장을 창출한 혁신 기업으로 꼽힌다. 지난 10일 세계 최대 VC인 세쿼이아캐피털 등으로부터 펀딩을 받은 덕에 기업가치가 11억달러(약 1조2300억원)까지 올라갔다. 이 회사는 미국의 의료비가 지나치게 비싸 저소득층이 병원을 잘 찾지 않는다는 데 주목, 정기적으로 고객의 가정을 방문해 건강 상태를 체크해주는 보험 서비스를 선보였다. 주기적으로 건강 관리만 받아도 병원을 찾을 일이 줄고, 의료비도 아낄 수 있다는 논리가 소비자는 물론 VC에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는 설명이다.
[스트롱 코리아] '미친 생각'에 베팅하는 미국…'수수료 0' 증권사, '건강 컨설팅' 보험사 나와
◆인공지능 스타트업 투자 급증

실리콘밸리에선 로빈후드나 클로버헬스케어와 같은 게임 체인저들이 매년 수백 개씩 쏟아진다. 여러 업종에서 새로운 사업모델을 갖춘 기업이 나오면 기업 생태계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고 일자리도 늘어난다. 최근 미국 경제가 빠르게 되살아나고 있는 이유기도 하다. 실리콘밸리에서 한국 기업의 액셀러레이터 역할을 하는 글로벌혁신센터(KIC)의 이헌수 소장은 “실리콘밸리에선 새로운 아이디어와 확실한 비즈니스 모델을 갖춘 기업에 돈이 모이는 선순환 구조가 확실하게 자리잡았다”고 설명했다.

최근 실리콘밸리 VC들은 인공지능(AI) 관련 스타트업 발굴에 공을 들이고 있다. 구글과 페이스북 등이 경쟁적으로 AI 신제품을 선보이고 있는 만큼 독창적 기술을 갖춘 AI 스타트업에 대한 M&A 수요도 늘어날 것으로 본 것이다. 컨설팅회사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의 AI 관련 기업 71곳이 7만5000달러의 펀딩을 받았다. 2015년과 비교해 투자받은 기업의 숫자는 16%, 투자금액은 22% 늘어났다.

실리콘밸리가 기회의 땅인 것은 분명하지만 어두운 면도 무시할 수 없다.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자동차 공유서비스 업체인 우버는 지난해 8월 트럭과 관련된 자율주행 기술을 갖춘 스타트업인 오토를 인수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오토의 창업자인 앤서니 레반도우스키가 이전 직장인 웨이모에서 1만4000개의 기밀문서를 훔친 것이 뒤늦게 발견됐기 때문이다. 현지 스타트업인 엔컴퓨팅의 송영길 대표는 “과정이 어떻게 됐든 돈만 벌면 된다고 생각하는 스타트업도 없지 않다”며 “VC들이 자금 회수 속도가 느리다는 이유로 이익을 내는 회사에서 갑자기 투자금을 회수하는 사례도 있다”고 말했다.

팰로앨토=송형석 기자 clic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