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당당한 공무원을 만드는 필요조건
경제가 어려워 취업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공직은 취업준비생들이 가장 들어가고 싶은 곳으로, 이른바 공시(公試)생이란 용어가 생길 정도로 경쟁률이 높다고 한다. 그런데 10명의 중앙정부 부처 사무관 중 7명이 이직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를 고려하겠다는 어느 신문 기사는 우리를 당혹스럽게 한다.

특근을 마다하지 않고 현장을 독려하던 개발연대의 공직자들은 일은 고되지만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데 일조했다는 자부심으로 사기가 충천했다. ‘계도(啓導)적 행정’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나라의 청사진을 그리고 나라 만들기에 앞장선 그들이다. 그러나 일부 공직자의 공사 구분을 망각한 행태로 인해 행정 개혁의 주체에서 사정 개혁 대상으로 몰리면서 법 뒤에 숨어 세금만 축내는 집단이라는 비판의 중심에 서는 안타까운 현실이 됐다. 공직자를 영혼이 없는 집단으로 매도하고 ‘관피아’라는 말까지 써가며 비난하는 것이 맞느냐를 떠나서 언제까지 이렇게 비난만 하고 공직자의 사기를 죽이는 것이 국가 발전을 위해 무슨 득이 되느냐를 생각해 봐야 한다. 종이 일을 제대로 안 한다면 종을 제대로 다루지 못한 주인 책임도 크다고 할 수 있다.

이제 공복(公僕)인 공직자가 맡은 바 임무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주는 데 신경을 쓰자. 그러려면 먼저 헌법이 보장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과 신분보장을 제대로 해줘야 한다. 선거철이면 선거캠프를 기웃거리는 공직자가 없도록 해야 한다. 지금의 우리 공직 인사 현실을 보면 미국에서 행정학이 탄생한 배경을 연상하게 한다. 미국에서 선거 후 정치인들이 공직을 나눠먹는 엽관주의는 나라를 망치는 것(spoils system)이므로 공직자의 충원과 관리는 실적에 따라 운용해야 한다(merit system)는 공직 인사 원칙을 공직 개혁 차원에서 정착시키기 위해 행정학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즉, 정치로부터 공직 인사의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 행정은 정치보다는 경영과 비슷하다고 보고 관리의 효율성을 강조하는, 행정학이라는 학문을 정립한 것이다. 우리가 공무원에게 영혼이 없다고 비아냥거릴 것이 아니라 왜 영혼이 없는 공무원으로 만들었는가 생각해보자.

다음으로는 공무원들도 헌법이 부여한 위대한 업무를 수행한다는 자부심과 함께 이를 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선포함으로써 국민이 국가 운영권을 정부에 맡겼음을 명백히 했다. 그런데 세월호 침몰 사건,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전염병 사태 등에 정부가 대처한 모습을 보면 신탁자인 국민으로서는 믿음보다는 걱정이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현대 복지국가에서 정부의 역할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막중하다. 이런 시대적 사명을 해낼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을 갖출 때 공직자는 본인들이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갖고 어떤 상황에서도 오로지 공익을 위해 일했노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어차피 공직자는 사적인 이익이라는 사사로움을 버리고 공익을 위한 길을 걷기로 했으므로 내가 한 일을 떳떳하게 밝힐 수 있도록 혼신을 다해 일하고 당당한 삶을 살자. 이것이 공직자가 살고 나라가 사는 길이다.

김정하 < 서울대 행정대학원 객원교수·전 감사원 사무총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