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지 뵤도인 봉황당
우지 뵤도인 봉황당
일본 교토 외곽에 있는 우지(宇治)는 소도시지만 만만치 않은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일본 최초의 신사인 우지가미 신사가 있고 10엔짜리 동전에도 새겨져 있는 천년고찰 뵤도인이 있다. 일본 고대 소설의 최고봉으로 인정받는 ‘겐지 이야기’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또한 윤동주 시인이 도시샤(同志社)대에서 같이 공부한 친구들과 생전에 마지막으로 사진을 찍은 곳이기도 하다. 소박하면서도 사색이 있는 여행을 원한다면 우지를 찾아 가는 것은 어떨까?

극락의 궁전이자 상징의 공간인 뵤도인

우지 여행의 백미는 ‘극락의 궁전’이라 불리는 뵤도인이다. 뵤도인은 1052년 당대 최고 권력자인 후지와라 요리미치가 그의 아버지 후지와라 미치나가에게 물려받은 별장을 개축한 절이다. 뵤도인의 핵심은 봉황당이다. 새 한 마리가 화려한 날개를 펼친 듯한 봉황당은 일본 동전 10엔짜리에 새겨져 있다. 한국인에게 뵤도인은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지만 일본인에게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는 의미를 넘어서 상징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는 사찰이다.

윤동주의 마지막 사진 배경이 된 우지강 아마가세 구름다리
윤동주의 마지막 사진 배경이 된 우지강 아마가세 구름다리
봉황당을 바라보면 마치 극락과 정토가 나뉘어 있는 느낌이 든다. 연못을 건너 봉황당에 이르면 부처님을 따라 극락에 닿을 것 같은 묘한 느낌을 준다. 봉황당은 20분 간격으로 50명씩 제한해서 들어갈 수 있다. 봉황당 안에는 거대한 아미타여래좌상이 금박 옷을 입고 화려한 자태로 앉아 있다. 흰 벽에는 구름을 타고 있는 52구의 운중공양보살상이 걸려있다. 작은 불상들은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추고, 정토를 날아올라 아미타여래를 찬양하고 있다.

뵤도인 절 봉황당 둘레에 물을 담아 놓은 것은 인간이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경험한 양수의 공간을 의미한다. 사람은 두 번 물을 건넌다. 한 번은 어머니 뱃속에서 양수를 건너서 세상으로 나오거나 강을 건너 다른 세상으로 간다. 그 상징적인 모습을 담은 것이 뵤도인이기 때문에 일본인이 사랑하는 절이 됐는지도 모른다.

겐지 이야기의 우지

우지강에 ‘겐지 이야기’의 무라사키 시키부 동상
우지강에 ‘겐지 이야기’의 무라사키 시키부 동상
우지는 일본 대표 고전문학 ‘겐지 이야기’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겐지 이야기는 헤이안 시대 중기, 궁정 시녀 무라사키 시키부가 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장편소설이다. 일왕 4대에 걸친 70년이 넘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겐지 이야기는 크게 3부, 200자 원고지 4800장에 400여 명이 넘는 인물이 등장하는 대작이다. 우지 마을 곳곳에는 겐지 이야기의 흔적이 넘쳐난다.

뵤도인을 나와 걷다 보면 우지강을 만난다. 우지강을 가로지르는 우지교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로 646년 고구려에서 건너간 도등 스님이 건설했다고 한다. 거칠게 흐르는 물이 화살같이 빨라 지나가는 나그네들의 말을 멈추게 하는 것을 본 도등 스님이 다리를 놓아 강을 건널 수 있게 했다.

우지강에는 겐지 이야기 3부에서 두 남자가 한 여인을 사랑하면서 벌어지는 애증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강가에서 사랑을 속삭이고, 거친 물살을 바라보며 여인이 자살을 시도하는 등 소설 속 애절한 이야기가 우지교 아래로 흐른다. 우지강은 1943년 민족시인 윤동주가 도시샤대 영어영문과에 재학 중 학우들과 야외 송별회를 하며 생전 마지막으로 사진을 찍은 장소다. 징병을 피해 귀국을 결심한 윤동주는 송별회 자리에서 학우들의 요청으로 ‘아리랑’을 불렀다고 한다. 윤동주의 마지막 사진 배경은 우지강에 놓인 아마가세 구름다리다.
우지강
우지강
유네스코 세계유산 우지가미 신사

우지교에서 우지가미 신사를 향해 걷다 보면 주홍빛 아사기리교를 만난다. 다리 아래에는 겐지 이야기 속 인물 우키후네와 니오노미야가 배 위에서 사랑을 속삭이는 장면을 묘사한 동상을 볼 수 있다. 소설 속 장면과 겹쳐지는 이들의 모습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의 애틋함이 느껴진다. 아사기리교 바로 앞에는 규모가 작은 우지신사가 있다. 이곳을 지나 조금 더 길을 오르면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우지가미(宇治上)신사가 나온다. 다각으로 독특하게 휘어진 신사 지붕이 인상적이다.
850년이 넘는 전통을 지닌 찻집 쓰엔의 녹차세트
850년이 넘는 전통을 지닌 찻집 쓰엔의 녹차세트
우지의 골목을 걷다 보면 여기저기 차 향기가 솔솔 새어 나온다. 겐지 이야기와 함께 우지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우지 차’다. 우지는 사이타마, 시즈오카와 함께 일본의 3대 녹차 산지다. 골목에는 차를 판매하는 상점과 아기자기한 찻집이 늘어서 있다. 8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우지강을 바라보고 있는 찻집 쓰엔은 아담하지만 고풍스럽다. 창가에 앉아 녹차 세트를 주문했다. 당고(쌀가루를 반죽해 작고 둥글게 빚은 화과자)와 함께 나온 녹차는 특별했다. 흔히 생각하는 맑은 녹차가 아니라 탕약을 달여낸 듯 진하고 걸쭉한 맛이 일품이다.

마을을 천천히 걷다 보니 어느덧 해가 저물었다. 밤하늘에 별이 총총하다. 고향을 그리며 별을 헤었을 그의 별이 뜬 것일까. 우지의 까만 밤에 보석이 걸렸다.

여행 메모

일본 소도시 우지는 교토 근교에 있다. 교토는 한국에서 바로 가는 직항편이 없기 때문에 오사카국제공항을 통하는 것이 좋다. 간사이국제공항에서 교토까지는 1일 30회 운행하는 JR 특급 하루카로 1시간10분 정도 걸린다. 보통열차로는 약 1시간50분 걸린다. 교토 역에서 JR 나라센을 타면 우지 역까지 25분 정도면 닿을 수 있다. 또는 게이한 산조 역에서 게이한 우지센을 타고 약 25분 후 게이한 우지 역에서 내리면 된다. 우지는 작은 마을이라 역에서 걸어서 충분히 둘러볼 수 있다.

우지=이솔 여행작가 leesoltou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