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봇과 인간의 대결을 그린 영화 ‘아이로봇’의 한 장면.
AI로봇과 인간의 대결을 그린 영화 ‘아이로봇’의 한 장면.
‘4 대 1.’

지금까지 열린 인간과 인공지능(AI) 간 대결 점수다. AI의 압도적 우세다. 체스(1997년), 퀴즈(2011년), 바둑(2016년), 포커(2017년), 번역(2017년) 등 5개 분야에서 인간이 이긴 종목은 번역뿐이다. 지금까지 AI는 공상과학(SF) 소설이나 영화의 소재로 활용돼 왔지만 이제 AI의 활약은 더 이상 허구가 아니라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책마을] 호모 사피엔스 넘어선 AI…데이터가 인간을 지배한다
호모 사피엔스의 역사를 다룬 《사피엔스》로 큰 반향을 일으킨 유발 하라리 이스라엘 히브리대 교수는 신작 《호모 데우스》에서 AI 시대 인류의 미래를 예측했다. 하라리가 풀어내는 인류의 미래는 자칫 섬뜩하게 느껴진다. 그는 “민주주의와 자유시장의 지휘권은 인간에서 알고리즘으로 넘어갈 것”이라며 “향후 다가올 거대한 기술혁명은 대부분의 인류를 ‘잉여 계급’으로 전락시킬 것”이라고 경고한다.

하라리는 이런 급진적이고 논쟁적인 주장을 촘촘한 논거로 설득력 있게 풀어간다. 21세기 인간은 경제 성장 덕에 기아와 역병, 전쟁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전례 없는 수준의 번영과 건강, 평화를 얻은 인류의 다음 목표는 ‘불멸과 행복, 신성’이 될 것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더 오래 살고, 더 행복해지고 싶은 인류의 다음 숙제는 ‘호모 사피엔스’를 ‘호모 데우스(deus·신)’로 바꾸는 일이라는 것이다.

하라리는 현대 과학기술의 발전이 이를 가능하게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인간의 유전자나 호르몬 체계를 바꾸든, 사람 몸에 기기를 융합하는 사이보그 공학이든, 인간은 ‘초인류’로 격상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저자는 이런 과학기술 발전이 인간의 자유주의 체제를 전복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지금까지 사회·경제체제를 지탱해온 건 인간의 ‘자유의지’를 신봉하는 인본주의였다.

인간은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투표(민주주의)하고, 물건을 구매(시장경제)했다. 인간은 자기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 위해 석양을 지켜보기도 하고, 괴테를 읽고, 일기를 쓰고, 좋은 친구와 진심 어린 대화를 나눈다. 자유의지는 인간이 가진 최고의 권력이다.

하라리는 하지만 인간이 신(神)으로 변모하려는 순간 인간의 권력은 알고리즘과 빅데이터로 옮겨갈 것으로 본다. 그는 이를 ‘데이터교’라고 부른다. 저자는 “인간의 자유의지도 인간 뇌 속 알고리즘의 결과”라며 “생명과학은 개인의 자유의지 역시 우리가 본 영화, 소설, 연설, 몽상 등을 뒤섞어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며 자유주의를 뿌리째 흔들 것”이라고 설명한다.

현대 기술로 완성된 정교한 알고리즘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알 수 있다. 유전자 조사 결과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87%라는 사실을 알게 된 미국 영화배우 앤젤리나 졸리가 암에 걸리지 않았음에도 2013년 유방 절제 수술을 받은 건 컴퓨터 알고리즘의 조언을 받아들인 사례다.

투표하는 일까지 구글의 알고리즘이 대신 해줄 수 있다. 무작위적 선거 유세나 개인적 친분, 극단적인 몇 가지 사건에 휘둘려 표를 던지는 나 대신 구글은 정밀한 생화학적 알고리즘을 거쳐 나의 진짜 정치적 성향을 파악해 투표해줄 수 있다.

인간보다 빠르고 완벽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알고리즘의 발전은 인간으로부터 일자리를 빼앗을 것이라는 게 하라리의 예측이다.

그는 “21세기 경제의 가장 중요한 질문은 ‘모든 잉여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관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생산성이 떨어지는 인간의 경험과 지혜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인간 중심적 세계관은 버려지고 데이터 중심적 세계관이 채택될 것이다. 인간의 행복은 보잘 것 없는 문제처럼 보여질 것이다.

하라리는 “민주주의, 자유시장, 인권이 과연 이 홍수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먼 훗날 되돌아본다면 인류는 그저 우주적 규모의 데이터 흐름 속 잔물결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날카로운 통찰력을 가진 이 책은 호모 사피엔스의 종말을 서늘하게 예언한다. 의식은 없지만 지능은 매우 높은 알고리즘이 우리보다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 될 때 다가올 수 있는 미래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하라리도 이를 의식한 듯 책 말미에 “이 책이 제시한 모든 시나리오는 예언이라기보다 가능성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