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영국식 규제 해법 '1 in, 3 out'
‘규제 개혁 모범국’으로 꼽히는 영국도 예전엔 각종 규제로 몸살을 앓았다. 19세기 중반 증기자동차가 나왔을 때의 ‘적기조례(赤旗條例·Red Flag Act)’가 대표적이다. 시내에서는 시속 2마일(3.2㎞) 이상 달리지 못하게 하고, 빨간 깃발을 든 기수가 자동차 앞에서 달리며 차량 진입을 알리도록 했다. 보행자와 마차의 안전 보호가 명분이었지만, 마차와 철도업계의 반발이 더 큰 배경이었다. 이 규제는 30여년 뒤 폐지됐다. 그 사이 자동차산업 주도권은 독일과 미국으로 넘어갔다.

그때나 지금이나 진입 규제는 신산업 성장을 저해한다. 그래서 영국은 ‘규제 줄이기’에 사활을 걸고 있다. 정부 입법으로 규제가 신설·강화되면 기존 규제를 그만큼 없애는 ‘1 in, 1 out’ 제도를 2010년 도입했다. 2013년 이를 ‘1 in, 2 out’로 늘리고, 지난해에는 ‘1 in, 3 out’으로 확대했다. 5년간 기업 규제비용을 100억파운드(약 14조7000억원) 줄인다는 목표를 세우고 첫해부터 8억9000만파운드(약 1조3000억원)의 절감 효과를 거뒀다.

공무원의 행정 편의주의와 전문성 부족 문제는 민간의 힘으로 풀었다. 각 부처가 규제를 신설하려면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규제정책위원회의 검증을 받고 의견을 반드시 수용하도록 했다. 그 덕분에 2009년 86위이던 영국 규제경쟁력 순위(세계경제포럼)는 지난해 25위로 뛰어올랐다. 같은 기간 한국은 98위에서 105위로 떨어졌다.

한국 규제정보포털에 등록된 규제 수는 2014년 3월 1만5300건에서 올해 4만여 건으로 늘었다. 갤럭시S8에 내장된 헬스케어 앱의 ‘화상 진료’ 기능을 한국에서만 사용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의사의 원격 진료를 금지한 규제 탓이다.

규제 완화는 대규모 재정지출 없이도 할 수 있다. 화장품 제조 원료를 일일이 지정하지 않고 특정 원료만 금지하는 ‘네거티브 규제’로 바꾸자 화장품 생산액이 27% 늘고 고용증대 효과가 32%로 뛴 사례를 보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직후 규제의 75%를 없애겠다고 약속하고 ‘1 in, 2 out’을 도입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 역시 규제 완화를 통해 17개 지방자치단체를 국가전략 특구로 지정했다.

한국의 규제프리존특별법은 아직 국회에 묶여 있다. 다행히 문재인 대통령이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해 규제를 대폭 완화하겠다니 기대가 크다. 기업들도 정부지원만 바라기보다 자생적 규제 혁파의 길을 찾고 대안을 정부와 공유하는 게 필요하다. 그래야 획일성과 경직성의 규제 굴레에서 우리 사회 전체가 벗어날 수 있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