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장 분석도 안하고 내놓은 지주사 규제 공약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선 때 재벌개혁 공약의 하나로 ‘지주회사 규제 강화’를 약속했다. 지주회사로 전환한 대기업의 무분별한 사업 확장을 막고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공정거래법을 고쳐 지주회사 부채비율(현행 200%)을 100~150%로 낮추고 자회사·손자회사 지분율 요건(현행 상장 20%, 비상장 40%)을 10%포인트씩 올리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지주사 규제 강화의 파장은 작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공약대로 상장 자회사의 최소 지분율 요건을 10%포인트 올리면 24개 지주사가 약 3조3000억원(11일 종가 기준)의 돈을 써야 한다. 전체 비용의 70%인 약 2조3000억원은 중견 지주사 몫이다. ‘지주사 규제가 애꿎은 기업을 잡는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주사 규제 강화 같은 문 대통령 경제 공약의 설계자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다. 18일 기자간담회 때 김 후보자에게 “지주회사 규제의 구체적인 방안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4대 재벌보다 중견 지주사의 부담이 커지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도 던졌다.

답변은 예상 밖이었다. 그는 “지주사 행위제한 규정은 법 개정 사항”이라며 “국회와 잘 협의하겠다”고 말을 아꼈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선 “구체적인 내용이 가지는 효과에 대해선 정확하게 시뮬레이션하는 작업이 필요하다”며 “공정위가 잘 준비해서 국회와 잘 협의하겠다”며 피해갔다.

20년을 재벌개혁 운동에 몸담았던 김 후보자가 지주회사 규제 강화 영향에 대해 면밀히 고민하지 않았다는 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이날 그의 답변만 놓고 보면 규제 파장에 대한 정확한 예측도 없이 공약을 제시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김 후보자가 이끌 공정위가 전 세계 조류인 ‘경쟁 촉진’이 아니라 ‘재벌 규제’로만 기울 것 같다는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합리적인 분석 없이 내놓은 공약을 밀어붙인다면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황정수 경제부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