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새 정부도 '한전돈은 쌈짓돈'
새 정부가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8기의 가동을 다음달 중단하겠다는 미세먼지 감축 대책을 내놨다. 전력 생산 감소로 680억원 정도의 전기요금 상승 요인이 발생하지만 요금을 올리지 않고 한국전력이 이를 부담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청와대와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그 정도는 한전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입을 모았다.

내년부터는 가동 중단 기간을 넉 달(3~6월)로 늘린다. 가동 중단 발전소도 8기에서 10기로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전력 부족이 심해질 경우 전기료의 큰 폭 상승이 불가피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청와대는 가동 중단이 길어지면 전기료가 얼마나 오를지, 이것도 한전에 부담하게 할지에 대해선 답을 내놓지 못했다. 일각에선 최소 4000억원의 전기료 상승 요인이 발생할 것이란 예상을 하지만, 더위가 일찍 시작되면 금액이 더 뛸 수 있다.

한전은 지난해 창사 이래 최대인 12조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이는 박근혜 정부가 한전 돈을 ‘쌈짓돈’처럼 사용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지난해 말 단행한 전기료 누진제 개편이 대표적이다. 매년 1조원 이상의 전기료가 덜 걷히게 됐지만 정부는 예산 지원 없이 이를 한전이 모두 떠안게 했다.

문재인 정부도 정권 초기부터 한전 돈으로 ‘생색내기’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 정권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책을 만드는 입장에서는 한전 돈만큼 편리한 게 없다. 정부 예산을 쓸 필요도 없고 국민 저항도 작다. 한전만 눈감으면 당장은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구조다.

하지만 한전의 이익은 국민이 낸 전기료에서 나온다. 전기료는 전력산업기반기금 등이 포함돼 있는 준조세다. 청와대가 “발전소 가동을 중지해도 국민 부담이 없게 하겠다”고 했지만, 사실상 국민 돈으로 추가 비용을 치르는 것이다.

한전이 흑자행진을 언제까지 이어갈 지도 불투명하다. 한전은 2012년까지만 하더라도 만성 적자 기업이었다. 지금도 누적부채가 100조원이 넘는다. 화력발전을 줄이려면 결국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걸 공개하고 국민적 동의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주장이 그래서 나온다.

이태훈 경제부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