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유일호 부총리의 마지막 숙제
“변화무쌍한 1년이었죠. (경기를) 방어하느라 꽤 고생했습니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면서 소주 한 잔을 들이켰다. 지난 1월 한국 경제 설명회(IR)를 열기 위해 뉴욕을 방문한 자리에서다. 당시 역대 최저 금리로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발행에 성공한 뒤 특파원들과 저녁을 겸한 간담회를 열었다. 그날은 유 부총리가 취임한 지 1년에서 딱 하루 모자란 날이었다. 소회를 묻자 “돌아갈 정당이나 남아 있겠느냐”며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

유 부총리는 지난해 12월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 결의 후 실질적으로 한국 경제를 관리해왔다. 청와대의 기능 마비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의 압박, 대외 여건의 불확실성 속에서도 경제사령탑 역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새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국정 공백 상태는 벗어났고 경제도 기대보다 호전돼 부담을 덜었다. 이제 새로운 경제 수장이 취임할 때까지 자리만 지키면 될까. 최근 뉴욕을 방문한 전직 고위관료는 “박근혜 정부 내각이 해야 할 마지막 숙제가 남아 있다”고 했다. “여의도 정치의 폐해에 대한 문제 제기”다. 그 역할을 전 정부의 경제 수장이 맡아줘야 한다는 것이다.

유 부총리는 과거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정책위원회 의장까지 지냈다. 정통 관료가 아니라 정치인 출신 경제 수장이지만 그 누구보다 ‘정치 프로세스’의 해악을 잘 안다. 지난해 9월 추가경정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그는 ‘야권 공조’에 발목이 잡혀 한동안 마음을 졸였다.

당시 야당은 정부가 7월에 신청한 추경을 정치적 요구와 결부시키며 두 달 넘게 잡고 시간을 끌었다. 추경안은 주고받기식 ‘거래’를 통해 간신히 통과됐지만 유 부총리는 사석에서 “정치가 ‘필요악’이 됐다”는 얘기까지 했다고 한다. 공격수와 수비수가 달라졌을 뿐 여소야대에서 출발하는 새 정부도 비슷한 상황에 놓일 것이다.

정권이 바뀌면 과거 정부에서 일한 공직자는 ‘영혼 없는 공무원’ 취급을 받았다. 떠나는 공직자도 체념한다. 정치인 출신인 유 부총리가 공직사회에 귀감이 될 수 있는 유종의 미를 남기면 어떨까.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