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나무 사진관 김현식 작가가 자신의 어머니와 이모, 삼촌을 찍은 '가족첩' 일부와 흑백으로 찍은 자화상 사진들.
물나무 사진관 김현식 작가가 자신의 어머니와 이모, 삼촌을 찍은 '가족첩' 일부와 흑백으로 찍은 자화상 사진들.
그 사진관은 사람들이 들어만 가면 울고 나온다는 소문이 있다. 서울 계동 골목길에 있는 낡은 벽돌 건물. 원래는 양은냄비 공장이었는데 1960년대만 해도 노동자들이 바삐 들락날락하는 통에 늘 붐볐더랬다. 그들이 만든 양은냄비로 집집마다 찌개며 라면을 보글보글 끓였다. 세라믹에 스테인리스, 코팅 냄비가 나타나자 계동 골목의 기계소리는 끊겼다. 공장 건물은 텅 빈 채로 세월을 버텼다.

김현식이라는 사진작가가 2011년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서울예대에서 사진을 전공한 뒤 사진기자로 일하던 그는 이 건물이 낡아서 더 마음에 들었다. 해진 건물에 ‘물나무’라는 이름을 붙였다. 바닥을 쓸고 닦은 뒤 조명을 달고 가구와 카메라를 들였다. 이곳에서 한국의 문화와 정서를 담은 ‘한국적 사진’을 찍기로 했다. 김 작가는 “색과 형태를 예쁘게 보정하고 인위적인 자세를 잡는 사진이 아니라 본질을 담아낼 수 있는 사진이 한국적 사진”이라고 했다. 조선시대 극사실주의 초상화를 개화기 때는 ‘사진’이라고 불렀다. 그는 대상의 겉모습뿐 아니라 정신까지 담아내는 조선 화가처럼 사진을 찍고 싶었다. 그래서 물나무는 흑백사진관이 됐다. 현실을 변형하는 디지털 사진과 달리 흑백사진은 본질을 담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다. 흑백사진 중에서도 은을 감광재료로 쓰는 은염 사진을 찍는다.

사람들이 이 사진관에서 울기 시작한 건 2015년께부터다. 김 작가는 사람들이 ‘셀카’ 찍는 것을 주의깊게 봤다. 그는 “사람들이 셀카를 찍을 때 부자연스러운 표정을 짓고 드라마틱한 결과를 얻어내려 한다는 점을 발견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말 자신의 모습을 담을 수 있는 ‘자화상’을 찍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서울 계동 골목길에 자리한 물나무 사진관. 이수빈 기자
서울 계동 골목길에 자리한 물나무 사진관. 이수빈 기자
그때부터 물나무 사진관에서는 방문객이 스스로 자기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해줬다. 방문객이 자화상을 찍으러 오면 사진사는 질문을 던진다. 직책이나 관계가 아닌 정말 자신에 대해 생각할 수 있도록. 그 다음 사진사는 뒤로 물러나고 카메라와 거울만 남는다. 방문객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도 좋다. 이때 방문객은 거울로 자신의 모습을 계속 들여다봐야 한다. 어떤 게 진짜 나의 모습인지 알 수 있을 때까지. 평생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을 봤던 사람들이 난생 처음으로 자신과 독대한다. 그리고 눈물을 흘린다. 자신과의 시간이 낯설어 못 견디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마음의 준비가 되면 셔터를 직접 누른다. 두 달 뒤 16가지 공정을 거쳐 사진이 나온다. 잘 말린 흑백 자화상에는 자신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김 작가는 “자화상을 찍기 위해 자신을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깨달음을 얻거나 치유를 받았다는 사람이 많다”고 했다.

김 작가 자신도 계속 사진을 찍었다. 주로 현대 인간상을 담아왔다. 사진을 전시할 때는 각 개인의 이야기를 글로 적어 함께 전시한다. 최근엔 ‘가족첩’이라는 전시를 위해 자신의 어머니와 이모, 외삼촌 9남매를 찍었다. 그들의 생을 짤막하게 글로도 남겼다. 김 작가는 “그들이 어디에서 태어났고 어떻게 자랐는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읽고 나면 비로소 가족 전체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다”고 했다. 그 전에는 ‘북촌사람’이란 전시를 했다. 북촌에 살고 있는 토박이들을 인터뷰한 뒤 그들의 이야기와 사진을 담았다.

자화상 전시도 연다. 오는 6월23일까지 서울 안국동 사비나미술관에 가면 볼 수 있다. 이곳에도 관람객이 자화상을 촬영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필름카메라로 찍는 사진관과 달리 이곳에서는 폴라로이드로 찍는다. 결과물을 바로 볼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