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27일(현지시간)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함께 미국 재향군인회를 방문해 손으로 원을 그려 보이며 뭔가를 설명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부정부패로 제대군인 치료 소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재향군인회를 개혁하기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 행정명령은 내부고발자를 보호하는 시설을 건립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워싱턴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27일(현지시간)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함께 미국 재향군인회를 방문해 손으로 원을 그려 보이며 뭔가를 설명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부정부패로 제대군인 치료 소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재향군인회를 개혁하기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 행정명령은 내부고발자를 보호하는 시설을 건립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워싱턴AFP연합뉴스
“나는 위대한 협상가다. 그래서 부자가 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에 대해 한 말이다. 29일(현지시간) 취임 100일을 맞는 그는 그동안 상대에게 극단적인 말로 후려친 뒤 달래며 실리를 얻는 소위 ‘하이볼(high ball)’ 협상전략을 실천해왔다. “환율 조작의 챔피언”이라며 중국을 비난하던 그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만난 뒤엔 연일 “훌륭한 사람”이라고 치켜세우며 대북(對北) 공조를 얻어낸 게 대표적이다.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비용 10억달러를 내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끝낼 수 있다”며 27일 갑작스레 ‘한국 때리기’에 나선 것도 비슷한 협상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거친 입의 타고난 협상가

트럼프 대통령이 종전 태도를 바꾼 건 한두 번이 아니다. 취임하자마자 중국 견제를 위해 차이잉원(蔡英文) 대만 총통과 전화했던 그는 이날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시 주석과의 관계에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다”며 차이 총통과는 다시 통화하지 않겠다고 했다. 중국에 대한 지렛대로 대만을 활용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서 북한 관련 협조뿐 아니라 ‘무역 불균형 해소를 위한 100일 계획’ 약속도 받아낸 상태다. 북한에 대해선 항공모함과 핵잠수함 등을 총동원한 무력시위로 추가 핵실험을 일단 막더니 27일 ‘대북정책 합동성명’을 통해 대화의 문을 열어뒀다고 밝혔다.

동맹국에도 마찬가지다. 멕시코에 국경장벽 구축과 함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폐기하겠다고 공격해왔고, 지난 25일에는 캐나다에도 “우리를 속여왔다”며 캐나다산 수입 목재에 3~24%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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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다음날인 26일 그는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엔리케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과 통화했다”며 “NAFTA를 폐기하지 않고 신속히 재협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재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기 위해 그동안 인접국들을 때린 모양새다.

유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겨냥한 태도도 바뀌었다. NATO를 “쓸모 없는 기구”라고 했던 그는 옌스 스톨텐베르그 사무총장과 만난 뒤 “NATO는 변했다”고 언급했다. “모여 노는 곳”이라던 유엔과 관련해선 안토니우 구테흐스 사무총장과 만난 뒤 “엄청난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유엔 분담금 삭감, NATO 회원국 분담금 증액 등을 관철시키려는 노림수라는 분석이다.

미국 언론에 연일 “가짜뉴스”를 쓰고 있다고 비난하던 그였지만 지난 1월 취임 직전 가장 먼저 뉴욕타임스를 찾아가기도 했다. 이번주에만 AP, 로이터와 인터뷰하는 등 언론과의 접촉이 잦아졌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트럼프 대통령은 매번 언론을 때리지만 그 전 대통령보다 훨씬 인터뷰 등에 잘 응한다”고 보도했다. “그가 목적을 이루기 위해선 룰을 지키지 않지만 정말로 원할 때는 충동을 참고 기존의 전통을 지킬 때도 있다”고 썼다.

트럼프 대통령이 사드 비용, 한·미 FTA 폐기 등을 꺼낸 것도 하이볼 협상 전략의 일환이라는 게 전문가 평가다. 《도널드 트럼프와 어떻게 협상할 것인가》라는 책을 펴낸 안세영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트럼프는 상대를 적대적으로 대하고 끊임없이 양보를 요구하는 ‘하드 포지션 협상가’”라고 말했다.

◆워싱턴 외교가의 시각

미국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강공이 미국 내 사정 때문이라는 해석을 내놓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건강보험개혁이나 세제 개편, 멕시코 장벽 설치 등 주요 공약을 추진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자칫하다간 내년 중간선거를 빈손으로 치러야 하는 상황에 몰릴 수 있다. 미국의 영향력이 절대적인 한반도 문제에서 성과를 내려 한다는 분석이다.

대북정책에서 엇박자를 낼 수 있는 한국의 차기 정부에 한·미 FTA 재협상이나 폐기, 사드 배치 비용 등을 무기로 적극적인 협조를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도 있다.

■ 하이볼

high ball. 협상할 때 극단적 제안으로 시작하는 전략. 성공하면 시작부터 주도권을 잡을 수 있지만 협상 자체가 깨질 위험도 있다. 예를 들어 시가 10억원 상당의 주택을 사려 할 때 “4억원에 사겠다”고 제안하는 식이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김현석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