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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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전이 종반으로 치달으면 부동표가 줄어드는 게 상식이다. 정책과 비전 등 후보를 판단할 근거가 늘어난다. TV토론도 후보들의 자질을 가늠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마음을 정하지 못한 유권자가 자연스럽게 줄어들 게 마련이다.

대선을 1주일여 앞둔 이번 대선에선 이런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부동층이 줄지 않고 있다. 되레 늘었다는 조사까지 나오고 있다. ‘지지 후보가 없다’ ‘모르겠다’는 응답은 대체로 10-20%선이다. 이 정도면 역대 대선과 크게 다르지 않다. 특이한 점은 “지지후보를 바꿀 수 있다”는 광의의 부동층이 크게 는 점이다. 일부 조사선 30%가 넘었다. 갤럽 조사(25-27일 1006명 대상. 표본오차 95%신뢰수준에 ±3.1%포인트. 한국갤럽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지지 후보가 없다’ ‘모르겠다’는 응답은 11%였다. 후보를 바꿀 수 있다는 광의의 부동층도 32%에 달했다. 유권자 10명 중 세명이 막판에 지지후보를 바꿀 수 있다는 여지를 남겨놓고 있는 것이다. 기현상이다.

물론 질문에 원론적으로 그렇게 답변한 것이지, 실제 바꾸겠다는 의미는 아닐 가능성이 높다. 대다수는 지금의 지지후보를 바꾸지 않을 것이다. 실제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치러진 대선에서 후보등록 시점에 지지율에서 앞선 후보가 모두 승리했다. 한번 마음에 둔 후보는 잘 바꾸지 않는 게 유권자의 심리다. “이번 선거는 여러가지 면에서 과거와 다르지 않느냐”고 반문하지만 결론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1992년도 대선부터 지금까지 정치부 기자로 취재해본 결과 비슷한 의문과 질문이 쏟아졌지만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권자가 지지후보를 바꿔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후보를 바꾸기보다는 투표를 포기할 개연성이 높다고 봐야한다.

부동층이 줄지않는 것은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어서다. 최선 또는 차선의 카드가 보이지 않을 때 고민한다. 이번 대선이 그렇다. 고민이 가장 많은 유권자는 최소한 30%정도로 추산되는 보수층이다. 밀어줄만한 후보가 없다. 지지율 1, 2위인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진보성향 후보다. 보수층 입장에선 마땅치 않다. 보수층의 지지가 한때 안 후보에게 쏠렸던 것은 안 후보가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다. 보수층의 반감이 큰 문 후보의 집권을 막기위한 ‘차악의 선택’이었다.

그런 보수층이 최근 안 후보를 떠나고 있다. 안 후보를 지지한 단 하나의 이유는 당선 가능성이다. 지지율 하락으로 당선 가능성이 낮아지면서 보수층이 떠나는 것은 이상할 게 없다. “어차피 안 후보 당선이 어렵다면 안 후보를 밀 이유가 없다”는 ‘역 사표론’의 심리가 작용한 것이다. 이를 자초한 것은 안 후보다. 중도·보수에 안정감있는 지도자라는 확신을 심어주지 못했다. 역전의 계기로 삼겠다던 TV토론은 실망 그 자체였다. 미래와 통합의 메시지로 중도·보수 표심을 잡느 대신 네거티브에 집중하다 토론을 망쳤다. 중도·보수층 사이에선 “안철수가 불안하다”는 얘기가 터져나왔다.

호남과 보수 사이서 눈치를 보며 어정쩡한 ‘줄타기 행보’를 한 것도 중도·보수를 떠나게 한 요인이었다. 안 후보의 기본 지지기반은 호남이다. 국민의당 지역구 의원 대부분이 호남에 적을 두고있다. 햇볕정책과 사드 배치 등에서 양비론적 접근으로 보수가 원하는 메시지를 내지 못한 이유다. 보수색깔을 강화하면 호남 민심이 떠날 수 있어서다. 안 후보를 지지하는 진보진영은 진보진영 대로 불만이다. 안 후보가 자꾸 보수색깔을 내려한다는 것이다. 안 후보는 결국 보수에 안정감을 주는데 실패했을 뿐더러 어정쩡한 ‘보수 구애’로 일부 호남 민심까지 잃었다. ‘안보는 보수 경제는 진보’라는 온건 진보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지 못한 게 지지율 하락의 가장 큰 요인이다.

안 후보 지지율이 지난 2주동안 10%포인트 이상 빠졌다. 이탈표는 보수후보인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와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에게 상당부분 갔다. 홍 후보의 반사이익이 컸지만 상당수 이탈표는 여전히 부동표로 남아있다. 홍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낮다는 점에서 사표심리가 발동했다. 문 후보도 반사이익을 보지못하기는 마찬가지다. 문 후보가 여전히 40% 안팎의 박스권에 갇혀있다. 여전히 안 후보에겐 마지막 기회가 남아있는 셈이다.

마음 둘 곳 없는 보수층의 선택지는 세가지다. 안 후보로 돌아가든지, 홍 후보를 밀든지, 아니면 이번 대선을 포기하고 기권하는 것이다. 안 후보에 돌아간다는 의미는 문 후보의 집권을 막기위해 문 후보와 경쟁할 후보는 그나마 안 후보밖에 없다는 대안부재론에 근거한다. 홍 후보를 미는 것은 사실상 대선후보를 보겠다는 의미가 강하다. 대선 후 보수세력의 결집을 위해 보수후보에게 표를 주겠다는 것이다. 물론 안 후보나 홍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사라지면 다수는 기권할 가능성이 높다. 안 후보가 친문 친박을 배제한 통합정부 구성안을 승부수로 던졌다. 중도·보수에 희망의 메시지가 될지는 미지수다.

현 지지율로 보면 누가 대통령이 되든 45%안팎의 득표율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박근혜(51.6%), 이명박(48.7%), 노무현(48.9%) 전 대통령의 득표율에 미치지 못한다. 보수층이 대거 기권하면 역대 대선 최저 투표율(17대 대선 63%)을 경신할 수도 있다. 전체 유권자 기준의 환산득표율이 사상 처음으로 30%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도 다분하다. 17대선 때 48.7%를 득표한 이명박 전 대통령의 환산득표율은 30.4%였다.

결국 차기 대통령은 국민 30% 정도의 지지로 당선될 가능성이 높다. 국민은 이미 양분돼있다. 보수와 진보는 대선이 끝나기도 전에 담을 쌓고 있다. 대선과정에서 등 돌린 유권자가 새정부에 힘을 실어줄 가능성은 낮다. 정부의 반대편에 견고한 성을 쌓을 개연성이 다분하다. 보수 대통령을 진보진영이 비토하고, 진보 대통령을 비토하는 악순환이 이번 대선서도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 역대 대통령이 30%안팎의 지지율로 고전한 이유다.

게다가 여소야대 정국이다. 당장 협치 없이는 차기 정부를 구성하는 것 조차 쉽지않다. 두달간의 대통령직 인수위 활동을 거친 박근혜 정부도 조각에 50여일이 걸렸다. 총리 후보자와 장관 후보자 두명이 낙마하면서 고전했다. 이번엔 그런 준비과정도 없이 맞는 정권이다. 자칫 국가 안보가 위중한 상황서 조각에 몇달을 허송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차기 정부의 성공적인 출발 여부는 결국 차기 대통령 하기에 달렸다. 자신을 더 낮추고 양보하는 자세로 협치에 나선다면 희망이 있지만 힘을 앞세우면 불행한 역대 대통령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재창 정치선임기자 leej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