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사업을 분사한다. 책임 경영을 강화해 파운드리 사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비메모리반도체를 생산하는 청주 M8라인 전체가 신설되는 파운드리 법인에 편입된다. SK하이닉스는 순수 메모리반도체 회사로 남게 된다.

◆늦어도 연내 분사 마무리

SK하이닉스 파운드리 사업부, 이르면 7월 분사
26일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최근 파운드리 사업부 직원을 대상으로 분사와 관련한 설명회를 열었다. 독립해 신설되는 회사명은 ‘SK하이닉스시스템IC’(가칭)다. SK하이닉스의 사장급 임원 중 한 명이 신설법인 사장으로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르면 7월, 늦어도 연내에는 분사 작업이 마무리될 예정이다.

SK하이닉스 파운드리 사업부는 오랜 기간 부진에 빠져 있다. 공장 가동률은 최근 80%까지 올랐지만 한때 50%를 밑돌았다. 매출은 2000억원으로 SK하이닉스 전체 매출의 1%를 밑돈다. 매그나칩반도체가 흑자전환하는 등 파운드리 업황이 전반적으로 좋았던 지난해에도 영업손실을 냈다.

반도체업계에서는 이 같은 문제가 파운드리 사업의 특수성 때문으로 보고 있다. 제품 하나를 개발하면 전체 생산라인이 길게는 1년 넘게 하나의 제품만 생산하는 메모리 사업과 달리 파운드리는 다품종 소량생산 위주다. 하나의 생산라인에서 수십개 팹리스(반도체 설계업체)가 위탁하는 반도체를 만들어야 한다. 며칠 간격으로 생산계획을 바꿔야 할 때가 많고, 고객사인 팹리스와의 관계도 중요하다.

메모리사업 비중이 절대적인 SK하이닉스는 파운드리 사업에 알맞은 의사결정 구조를 갖추기 어려웠다. 파운드리 사업부장도 상무급으로 회사에서 충분히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업계 관계자는 “SK하이닉스 내에 비핵심 사업부로 계속 남아 있어서는 앞으로도 자체 경쟁력을 갖기 힘들다고 판단한 것으로 안다”며 “분사해 파운드리 전문회사를 설립해 돌파구를 찾기로 했다”고 말했다.

◆호재 늘어나는 파운드리 사업

다행히 신설되는 파운드리 법인의 여건은 나쁘지 않다. 200㎜ 웨이퍼 기준으로 월 10만장의 생산라인을 갖춰 생산 규모와 기술에서 다른 국내 경쟁 업체에 뒤지지 않는다. 한때 50㎚(나노미터) 낸드를 양산하는 등 미세화 기술 수준도 높다. 세계적으로 200㎜ 웨이퍼 라인을 갖고 있는 파운드리의 가동률도 높아지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에 다르면 지난해 세계 200㎜ 반도체 생산공장 가동률은 88%를 기록했다. 300㎜ 웨이퍼 생산라인이 본격 도입된 2000년대 초반 이후 최고치다. 생산량의 5~7%를 시제품 테스트용으로 사용하는 걸 감안하면 100%에 가까운 가동률이다. 사물인터넷(IoT)을 중심으로 면적이 좁은 칩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200㎜ 파운드리를 선택하는 팹리스가 늘고 있어서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분사하면서 파운드리 설비 투자를 위한 SK하이닉스의 자본금 출자도 진행될 전망”이라며 “메모리반도체에 비해 취약한 국내 파운드리 생태계가 강화되는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