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기금과 공제회들이 종목을 선별해 투자하는 액티브 운용 비중을 대폭 낮추고 지수나 자산군에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 비중을 늘리고 있다. 코스피지수보다 낮은 성과를 내는 액티브 펀드에 돈을 맡기는 것보다 경기 흐름과 시장에 투자하는 패시브 투자가 낫다는 판단에서다. 패시브 투자는 코스피200 등 주요 지수등락에 따라 기계적으로 편입된 종목을 사고파는 방식을 말한다. 시장 평균 수익률을 목표로 한다.
'큰손'들, 액티브펀드 투자 줄이고 ETF 늘린다
◆군인공제회, 첫 ETF 투자

2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군인공제회는 올해부터 국내 주식 위탁운용 자금 중 최대 700억원을 ETF에 투자하기로 내부 방침을 정했다. 국내 주식 운용자금(9800억원) 가운데 직접 운용을 제외한 위탁 부문(3560억원)의 20%를 ETF에 넣을 예정이다. 군인공제회는 지난해까지 위탁운용 자금 전액을 펀드매니저들이 종목을 골라 투자하도록 ‘일임’ 형태로 맡겼다. 김재동 군인공제회 운용본부장(CIO)은 “개별 종목 매매로 ‘알파(추가) 수익’을 내기 쉽지 않은 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판단했다”며 “ETF 투자 비중을 꾸준히 늘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자산규모 22조원의 한국교직원공제회는 올해 ETF 투자금을 작년보다 60% 이상 늘리기로 했다. 지난해 800억원이던 ETF 투자 금액이 올해 1300억원까지 많아진다.

ETF에 직접 투자하는 공제회도 나왔다. 대한지방행정공제회는 지난해 주식 직접운용 자금 5000억원 가운데 최대 80%(4000억원)를 ETF에 투자했다. 지방행정공제회가 지난해 올린 주식 직접운용 수익률은 9.8%에 달했다. 코스피지수 상승률(3.3%)보다 6.5%포인트 높다. 사립학교교직원연금공단과 공무원연금공단도 올해 ETF 투자 비중을 크게 늘릴 방침이다.

◆ 패시브 투자 늘린 미국 연기금

국내 ‘큰손’들이 ETF 투자를 늘리는 배경엔 액티브 시장에 대한 불신이 자리잡고 있다.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지난해 펀드매니저들이 운용하는 주식형 공모펀드 평균 수익률은 -1.0%에 그쳤다.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 상승률보다 4.3%포인트 낮았다. 연 1% 초중반인 시중은행 정기예금 금리에도 못 미쳤다. 한 연기금의 자산배분 담당자는 “운용사들이 지난 2년 동안 이어진 중소형주 장세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며 “위탁 수수료를 내면서 손실을 볼 이유는 없다”고 설명했다.

투자 포트폴리오를 분산하려는 의지도 담겨 있다. 여러 자산운용사에 자금을 맡겨도 몇 달이 지나면 원래 포트폴리오를 허물고 단기 수익을 낼 수 있는 종목군으로 자금이 쏠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게 연기금의 불만이다. 1990년대 자신의 이름을 딴 ‘장동헌 펀드’를 운용하며 스타 펀드매니저로 이름을 날린 장동헌 행정공제회 부이사장(CIO)조차도 액티브 운용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유행에 따라 자산이 쏠리는 건 안정성이최우선인 공제회의 자금 운용 목적과 맞지 않는다”며 “극단적으로 말하면 몇 개의 ETF에 자산을 나누는 게 자금 분산 효과가 크다”고 설명했다.

연기금의 패시브 투자 확대는 한국뿐 아니라 미국 등 선진국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미국 네바다공무원연금은 39조원의 자금을 운용역 1명이 모두 패시브 자산에 직접 투자한다. 보수가 비싼 주식과 채권 자금을 모두 패시브 투자로 전환했다. 이런 방식으로 운용 수수료와 인건비를 크게 줄였다. 네바다연금이 운용역에 지급하는 임금은 연 12만달러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지난 5년 동안 비슷한 규모의 자금을 운용하는 하버드대학기금(연평균 5.9%)보다 높은 수익률(연평균 7.7%)을 올렸다.

■ 액티브(active)운용

펀드매니저 등 전문가가 개별 종목의 강점과 약점을 분석해 선별적으로 주식을 사고파는 투자 방식. 시장 평균을 웃도는 수익률을 내는 것이 목표로 패시브 상품에 비해 수수료가 높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