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로또 호황
복권의 대표격인 로또의 지난 1분기(1~3월) 판매액이 1조원을 넘었다고 한다. 분기 판매액 1조원 돌파는 로또 단가를 2000원에서 1000원으로 낮춘 2004년 이후 처음이다. 연말까지 4조원을 훌쩍 넘을 전망이라고 한다. 동시에 복권은 ‘빈자(貧者)들의 고통 없는 세금’이라는 비난도 다시 고개를 든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합리적 인간’(호모 에코노미쿠스)이라면 복권을 안 사야 맞다. 1000원짜리 로또의 기댓값은 500원이다. 절반은 복권기금(400원)과 판매비 등 부대비용이다. 살수록 손해란 얘기다. 그런데도 매주 줄잡아 800만명이 로또를 산다. 이른바 가능성 효과를 기대한 것이다. 당첨 확률이 벼락 맞을 확률보다 낮아도 완전히 ‘제로(0%)’는 아니니까.

언론들은 로또 호황을 한목소리로 ‘불황의 그늘’이라고 해석한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1998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 때도 복권 판매는 부진했다. 당시 언론들은 “불황으로 꿈조차 살 수 없다”고 썼다. 로또가 잘 팔려도 불황 탓, 안 팔려도 불황 탓이면 뭔가 이상하지 않나.

저소득층이 주로 산다는 상식도 실제와는 거리가 있다. 미국에선 저소득층, 유색인종일수록 복권을 더 산다는 통계가 있지만 한국은 되레 반대다. 기획재정부 복권위원회의 설문조사(한국갤럽) 결과 로또 구매자의 52.1%가 월소득 400만원 이상이었다. 저소득층(200만원 미만)은 10.2%에 불과했다. 설문에 발주기관의 입김이 작용했다 해도 조사결과까지 뒤집진 않았을 것이다.

로또 호황을 불황과 팍팍한 민생에만 초점을 맞춰서 들여다보면 착시가 생긴다. 아무리 저성장이라고 해도 해마다 인구가 늘고 소득도 늘어난다. 다른 변수가 없다면 복권 판매액이 조금이라도 느는 게 당연하다. 그렇다면 2014년까진 미미하던 로또 판매증가율이 2015년 6.8%, 지난해 10.9% 커진 이유는 뭘까. 판매점이 늘어난 게 주된 요인이다. 정부는 6000여개이던 판매점을 2015년부터 3년에 걸쳐 8000개로 확충하고 있다. 내년 말엔 로또 인터넷 판매도 시작된다. 접근성이 높아질수록 로또는 더 잘나갈 것이다. 그때마다 경기불황 탓이라고 할 텐가.

단돈 1000원으로 꿈꾸는 즐거움까지 막을 이유는 없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복권은 행운을 가장한 또 다른 ‘거위 털 뽑기’일 뿐이다. 복권기금이 늘어나는 재미에 빠져 ‘표정관리’ 중인 정부당국은 욕먹어 마땅하다. 판매목표액을 대폭 늘려잡고도 이젠 미안한 기색조차 없다. 로또로 인생역전 한 것은 로또 명당 주인들과 정부당국이 아닌가 싶다.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