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대통령이 대학입학금까지 간섭하는 나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후보 대부분이 대학입학금 폐지 공약을 내놓고 있다. 이렇게 되면 누가 당선이 되든 대학입학금 폐지는 기정사실이 될 것 같다. 그러나 대학에서 입학금을 받지 못하게 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대학 발전은 물론 학생들에게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대학입학금 폐지는 대학생의 표를 얻기 위한 선심성 공약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대학이 신입생에게 입학금을 받는 이유는 재학생과 달리 신입생을 받아들이는 준비를 하는 데 여러 가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신입생 등록과 관련된 전산 업무, 신입생 보조 및 서비스 등이 포함된다. 그래서 신입생들에게 재학생의 등록금보다는 더 많이 부과되는 것이다. 그 추가로 부과하는 것에 대해 입학금이라는 용어를 쓴다. 미국에서도 명시적으로 매트리큘레이션 피(matriculation fee)라고 하여 입학금을 받는 대학이 많다.

대학도 재정이 확보돼야 운영이 가능하다. 대학이 등록금에 의존해 운영되는 것이 우리나라 현실이다. 그런데 등록금 규제로 인해 대학 재정이 악화돼 있는 상태다. 여기에 입학금까지 금지한다면 대학 재정은 더욱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등록금 규제와 입학금 폐지는 일종의 가격규제다. 거론하는 것 자체가 지면낭비일 정도로 가격규제의 폐해는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등록금을 규제하고 입학금을 금지하는 규제는 학생과 학부모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선의에서 나왔을 것이다. 물론 이런 가격규제는 지금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에게는 재정적으로 도움이 된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보호하려고 했던 대학생들에게 피해가 돌아간다. 가장 큰 피해자는 가난한 대학생이 될 것이다. 가격규제로 인해 재정수입이 줄면 가난한 학생으로 가는 장학금이 줄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재원이 부족하게 되면 대학 발전과 양질의 교육에 대한 투자가 줄게 된다. 우수교수를 확보하기 어렵게 될 것이고, 교육과 연구에 대한 투입이 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장기적으로 대학 교육의 질이 떨어져 결국 그 피해는 대학생들이 보게 된다.

국내 대학교육이 질적으로 저하하면 양질의 교육을 원하는 사람들은 외국 유학의 길을 떠날 것이다. 유학을 갈 수 있는 학생은 대부분 부유한 집안 출신일 것이다. 유학을 떠나지 못하고 국내에 남아 질이 낮은 교육을 받는 부유하지 못한 학생들은 결국 글로벌 경쟁에서 뒤지게 된다. 대학 재정이 문제면 재단전입금을 늘리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립대학은 등록금 이외에 대학운영비를 조달할 수 있는 원천이 거의 없다. 수많은 규제로 인해 수익사업을 통한 재원마련이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기부금이라고 해봤자 동문을 통해 들어오는 약간의 기부금뿐이다.

등록금 수준은 입장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대학생 쪽에서는 높다고 할 수 있고 대학 쪽에서는 낮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어떤 재화나 서비스든 그것을 구입하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나 될 수 있으면 적게 지급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을 제공하는 측은 될 수 있으면 많이 받으려고 한다. 이런 이해상충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경쟁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등록금과 입학금을 규제할 것이 아니라 대학 간 경쟁을 유도하는 것이다. 경쟁이 있으면 대학들은 될 수 있으면 낮은 등록금으로 질 좋은 교육을 제공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학교육은 경쟁 구조가 아니다. 정부가 대학 설립운영, 수익자산 운용, 학사운영 등 거의 모든 것을 규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 하에서 대학의 경쟁력이 생길 수 없다. 경쟁이 존재한다면 대학들은 가능한 한 학생들의 부담을 적게 하면서 좋은 학생을 유치해 좋은 교육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통해 많은 재원을 확보하려고 할 것이다.

이제 정치와 정부가 대학을 놓아줘야 한다. 대학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정부의 통제 하에 두는 한 대학 발전은 요원하다. 급변하는 글로벌 환경에 맞는 인재를 양성할 수 있도록 대학을 자유롭게 해줘라.

안재욱 < 경희대 교수·경제학, 한국제도경제학회 회장 jwan@kh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