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라면] 신록(新綠)이 희망일 것이다
부산에 다녀왔다. 왕복 네 시간이 넘게 차창 너머를 바라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마치 큰일을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많이 보고 많이 생각한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많이 본 것은 차창 너머에 출렁거리는 신록이었다. 처음엔 가려운 듯 세상을 눈 비비며 나와 마치 어린 새의 혀 같다는 생각도 했는데 벌써 잎 모양을 하면서 연둣빛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그래서 눈엽(嫩葉)이라고 했는지 모른다. 투박한 나뭇가지를 뚫고 나오는 저 잎새들은 ‘잎의 새’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해마다 감동하고 눈물겨워진다. 저것을 보면 인간의 삶에 대한 투지도 생명의 순리인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때로는 마치 엷은 연둣빛 물결을 보듯 신록은 바람에 흔들렸다. 아름답다. 저런 자연을 본다는 것은 큰 선물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저 신록이 저렇게 아기 손톱 같은 귀여움으로만 살아가지 않을 것이다. 저 신록은 조금씩 더 색깔이 짙어지면서 소위 잎의 생이 얼마나 아프다는 것을 알고 말 것이다. 진해진다는 것은 무엇인가. 생명의 깊이와 넓이 그리고 높이를 몸으로 경험하면서 모든 역경을 이겨낼 때 진해지는 것이리라.

인간의 늙음도 진해지는 것이라고 나는 표현한다. 모든 걸 알았더라면 태어나지 않겠다고 손을 들었을 그 인생이라는 것은 그래도 늘 반반이었다고 나는 회고한다. 어려움이 반이었고 행복이 반이었을 것이다. 행복은 슬쩍 지나가고 고통은 오래 기억하므로 고통이 더 길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게 자신의 생을 스스로 수레처럼 이끌어 가다 보면 앳된 얼굴이 진해져서 얼굴에 인생이 그려져 올 때 우리는 늙었다고 표현하는 것은 아닐까.

생이란 것이 진해져서 세상의 그 어떤 색깔로도 칠할 수 없는 깊이의 표정은 아무래도 늙음보다 참 사랑스러움이라고 말하고 싶다. 시간처럼 무서운 것이 어디 있겠나. 색깔도 냄새도 무게도 없는 것이 그냥 스쳐 가기만 했을 것인데 모든 사람을 변화시켜 놓는 거 아닌가.

그러나 그 변화에 오늘은 절하고 싶다. 그 변화 때문에 고집 센 인간도 겸허해지고 시간의 귀중함도 스스로 알게 되는 게 아닐까. 그런 경험으로 아직 길을 묻는 사람에게 “저기”라고 손을 들어 길을 가르쳐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저 신록도 마찬가지다. 저 어여쁜 연둣빛 신록은 점차 짙어질 것이다. 연둣빛에서 녹음으로 검푸르게 변화해 갈 것이다. 그렇다. 바라만 봐도 짙푸른 물기가 손에 묻어날 듯 지독하게 녹음 천지로 세상은 변할 것이다. 억세질 것이다. 새의 혀 같은 귀여움과 가려움 같은 그 새잎은 생각하지도 못하는 폭풍과 천둥과 비바람을 그리고 몸을 태우는 태양과 만나면서 스스로 몸을 가누며 강하게 맞설 것이다. 그리고 짙푸르고 검푸르고 드디어는 단풍이 든 붉은 잎새가 되는 게 아닌가. 그리고 그다음은 뻔하다. 낙엽이 돼 나무뿌리를 덮을 것이다.

그렇다. 저 신록이 희망일 것이다. 저런 신록 같은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저 여린 잎새와 같이 언제 닥칠지 모르는 비바람과 천둥과 폭우를 스스로 제 몸으로 잘 이겨내고 짙푸르고 검푸른 녹음으로 이 세상을 신선한 바람으로 몰아가기를 오늘따라 간절하게 생각해 본다.

신달자 <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