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향기] 나는 말한다 고로 존재한다
누군가 “정치는 ‘워딩(wording)’”이라고 말한 게 생각난다. 하긴 예술이야말로 가장 오래 남는 워딩일 것이다. “예술은 사기”라고 말한 백남준의 말이야말로 예술에 관한 워딩 중 가장 인상적인 하나다. 내 인생의 기억 속에 남은 가장 첫 번째 워딩은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히포크라테스 선서 중의 한 문장이었다. 그 잊을 수 없는 워딩은 지금은 세상을 떠난 진화랑 대표 유위진 여사가 중학교 1학년에 갓 입학한 어린 내게 영어로 가르쳐준 문장이다. 어머니의 친한 친구였던 그가 영어 발음으로 말하던 그 문장을 아직도 나는 가끔 되뇐다.

며칠 전 꽃들이 한꺼번에 미친 듯 피어난 봄밤, 택시가 하도 잡히지 않아 길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다가 그냥 하염없이 걸었다. 요즘은 밤에 카카오 택시를 부르지 않으면 빈 차를 잡기가 쉽지 않다. 하염없이 걷다가 길목에서 우리 동네로 가는 버스가 서 있는 걸 발견하고는 너무 반가워 어쩔 줄 몰라 하며 버스에 올랐다. 택시를 잡지 못해 안달하던 조금 전의 절망적인 기분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새로운 희망에 들뜨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작은 일로 사람이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순간, 라디오에서 ‘최백호의 낭만시대’가 흘러나왔다. 정감 가는 어눌한 목소리로 그가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빨리 도망가는 세월은 도대체 성의가 없다.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다.” 나는 무릎을 치며 정말 맞는 말이라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성의가 없고 예의가 없는 게 사람이 아니라 세월이라고 생각하니 속수무책의 절망감이 다시 밀려들었다. 지지리도 책을 안 읽는 시대에 책 한 권을 덜컥 세상에 내놓고 나름의 고독병을 앓고 있는 중이었다. 친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무관심은 내게 약간의 절망감을 줬고 모르는 사람들이 남긴 독후감의 흔적에 희망의 깃발이 나부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남기는 소통의 한마디가 한 사람의 작가를 얼마나 행복하게 하는지 모를 것이다. 문득 대선을 앞둔 정치인들의 마음도 그럴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는 워딩이고 정치야말로 예술이다. 이 세상에 워딩 아닌 게 없다. 사랑도 명예도 정치도 예술도 다 워딩이다. 단지 히틀러의 워딩과 간디의 워딩이 다를 뿐이다. 대선이 다가오니 공약을 내놓는 정치인들의 워딩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예술과 정치의 말이 다른 점은 예술의 모호함에 비해 정치는 자신의 말에 현실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적 성향이 다르면 성적 매력이 떨어진다는 얼핏 말도 안 되는 통계가 나왔다고 한다. 정치적 성향의 차이란 어쩌면 삶에 대한 태도와 상통할지 모른다. 세상을 바라보는 법이 전혀 다르다는 건 서로를 외롭게 하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결혼을 해봐야 얼마나 내게 맞는 사람인 줄을 알듯이 대통령이 돼봐야 내가 옳은 투표를 한 건지 제대로 알 수 있을 것이다.

도대체 확실한 게 뭐가 있으랴? 그저 전쟁을 한 번도 겪지 않고 사는 삶이길 기원한다. 저녁이 있는 삶도,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아름다운 곳들과 먹어봐야 할 맛있는 것들도 전쟁이 난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기억의 반대말은 망각이 아니라 상상이다.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것은 상상이다. 미래는 기억하는 자가 아니라 상상하는 자의 것이다. ” 그렇게 말한 건 시몬 페레스 전 이스라엘 대통령이었다. 하지만 과거를 잊지 않는 것이야말로 미래를 향한 튼튼한 다리를 놓는 일이 아닐까?

황주리 < 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