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tty Images Bank
Getty Images Bank
강은주 씨에게 경영전문대학원(MBA)은 인생의 ‘터닝 포인트’다. 2년 전 그는 독일 명품회사에 근무하는 샐러리맨이었다. 그러다 서울과학종합대학원(aSSIST)이 운영하는 알토대(옛 헬싱키경제대) MBA에 등록한 뒤 삶의 목표가 바뀌었다. 핀란드 등 유럽 현지에서 하는 생생한 현장 교육은 그의 ‘창업 DNA’를 일깨웠다. 졸업을 앞두고 ‘샵플’이라는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창업했다. 각종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비정규직도 경력 관리가 필요하다는 점에 착안해 세운 회사다. 한국형 MBA가 진화하고 있다. 글로벌 주요 대학의 학위를 동시에 받을 수 있는 것은 기본이다. 금융 쪽에 쏠리던 것에서 벗어나 최근엔 스타트업 MBA, 가업승계를 위한 패밀리비즈니스 MBA 등 특화 과정이 인기를 끌고 있다.

해외 명문대 복수학위 가능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MBA를 꿈꿔봤을 것이다. 기업 현장에서 쌓은 경험에 이론까지 겸비하기 위한 욕구다. 하지만 문턱이 꽤 높았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MBA는 미국 명문대를 다녀와야 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요즘은 사정이 달라졌다. 한국형 MBA의 효용성이 더 커졌다. 미국 MBA도 상위 10위권 대학이라야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다. 분야 역시 금융 등으로 한정돼 있다. 동문 네트워크에도 한계가 있다. 종합적으로 볼 때 ‘가성비’가 떨어진다는 얘기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한국형 MBA의 장점이 두드러진다. 우선 경력 단절 없이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을 수 있다. 예컨대 이화여대가 운영하는 MBA는 일과 공부를 병행하려는 ‘슈퍼우먼’에게 특화 과정을 제공한다. 경쟁률이 치열하긴 하지만 어린이집도 이용할 수 있다.

복수 학위를 동시에 받을 수 있는 것도 특징이다. 고려대가 운영 중인 아시아 MBA는 상하이 푸단대와 싱가포르국립대 중 한 곳의 학위를 따게 해준다. 국내뿐만 아니라 중국 사업을 구상하는 이들에게 딱 맞는 과정이다. 학위만이 아니라 해외의 다양한 인재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도 넓어지고 있다. 한양대는 한국에 관심 있는 해외 인재들을 유치하는 CEMS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미국 유럽 아시아 각지 출신 학생들과 교류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알토대 MBA는 ‘다국적’으로 유명하다. 한 반의 70%가량이 글로벌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이다. 이들 대부분이 졸업 후 글로벌 기업의 아시아지역 본부장으로 가는 사례가 많다. 강 대표는 “동문이 추천해줘서 글로벌 기업에 입사하는 일이 종종 있다”고 귀띔했다.

창업·핀테크 특화 과정 인기

최근 주목받고 있는 MBA는 창업 과정이다. KAIST의 SEMBA는 졸업할 때 창업이 필수다. 사회적 기업가를 양성하는 과정으로 SK그룹이 지원하고 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년에 한 번 특별 강연을 할 정도로 공을 들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학비를 지원받을 수 있으며 교수진도 창업에 특화된 전문가들이다. 인기가 높아 선발 절차가 까다로운 데다 경쟁률 역시 치열하다.

서울과학종합대학원의 알토대 MBA도 창업에 관심 있는 이들이라면 눈여겨볼 만하다. ‘스타트업 사우나’라는 창업가 클럽이 유명하다. 강 대표는 “핀란드에 가서 2주간 공부하는데 이때 많은 경험을 했다”며 “한 번은 여러 나라 사람들이 모인 콘퍼런스에 갔다가 마이크를 공 모양으로 푹신푹신하게 만들어 발언하고 싶은 사람들한테 던져주는 걸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고 소개했다. 박제돼 있던 ‘창업 DNA’를 일깨우는 자극제가 됐다는 얘기다. 알토대 MBA가 최근에 신설한 영업혁신과정도 스타트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인기다.

금융 분야는 전통적인 재무관리보다는 자산관리나 핀테크 분야의 관심이 높아지는 추세다. 4차 산업혁명에 특화한 MBA 과정이 부상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은행 증권 모두 자산관리 영역이 핵심”이라며 “관련 전문가는 여전히 부족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한국형 MBA의 위상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한국형 MBA 13개 대학 중 11개교가 국제 인증을 획득했다. AACSB 인증은 총 11개교, EQUIS 인증은 총 3개교가 보유하고 있다. 고려대, 연세대, KAIST는 AACSB와 EQUIS 인증을 모두 획득했다. 외국인 신입생은 2014년 121명(45개국)에서 2015년 134명(55개국)으로 늘었다. 외국인 교수 역시 지난해 83명으로 전년(72명)보다 11명 늘어났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