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전실 해체후 사회공헌 위축·지주사 전환 보류…새 변화도 감지

삼성전자가 지난 7일 공시한 1분기 영업이익(잠정실적)은 역대 두 번째로 많은 9조9천억 원이었다.

삼성전자의 주력 사업 부문 중 하나인 반도체의 슈퍼호황이 이어지고 있는 데다 최신형 스마트폰 '갤럭시 S8'의 가세로 2분기 흑자 규모는 사상 최고치에 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런데도 삼성전자 경영진의 표정은 밝지만은 않다.

미래를 맞을 준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우려 탓이다.

두 달 전인 2월 17일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된 이후 삼성전자의 M&A(인수합병)와 투자는 멈췄다.

글로벌 업계가 4차 산업혁명으로 요동치고 있는데, 삼성전자는 앞으로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재계 관계자는 "수천억 원에서 많게는 수조 원이 들어가는 대형 M&A나 신사업 투자는 리스크가 커서 오너의 결단이 필요하다"며 "지금 삼성은 리스크를 책임질 총수가 없다 보니 제자리걸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 M&A '올스톱' = 병상에 있는 이건희 회장을 대신해 3년 전 경영 전면에 나선 이재용 부회장은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되기 전까지 사업 구조조정과 M&A, 굵직한 투자를 주도해왔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은 2014년 5월 비디오앱 서비스 개발업체 '셀비' 인수를 시작으로 미국 공조전문 유통회사 '콰이어트사이드', 캐나다 모바일 클라우드 솔루션업체 '프린터온', 미국 사물인터넷 플랫폼 개발회사 '스마트싱스', 서버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소프트웨어 업체 '프록시멀 데이터' 등을 사들였다.

이런 기업 쇼핑은 2015년에도 이어졌다.

브라질 최대 프린트 서비스 업체 '심프레스', 미국 모바일 결제 솔루션업체 '루프페이', 미국 상업용 발광다이오드 디스플레이 업체 '예스코일렉트로닉스' 등이 대표적인 삼성의 M&A 대상 회사다.

작년 한 해만 놓고 보더라도 삼성의 M&A와 투자는 숨이 가쁠 정도로 발 빠르게 이뤄졌다.

미국 클라우드 서비스업체 '조이언트'와 캐나다 디지털광고 스타트업 '애드기어'를 인수하고, 중국 전기차 업체 '비야디(BYD)'에 5천100억 원 상당의 지분 투자를 했다.

또, 미국 럭셔리 가전 브랜드 '데이코'를 품에 안은 데 이어 인공지능(AI) 플랫폼 개발기업인 '비브랩스'를 사들였고, 삼성전자 프린터사업부는 미국 HP(휴렛팩커드)에 매각했다.

정점은 작년 11월 미국의 전장전문기업 '하만(Harman)'을 무려 9조 원이 넘는 돈을 들여 인수한 것이다.

이후 이재용 부회장은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한 검찰의 수사 대상에 올랐다.

삼성의 M&A와 투자도 '올스톱'됐다.

출국금지 조치로 발이 묶인 상태에서 이재용 부회장은 검찰과 국회, 박영수 특검팀에 불려 다니기 바빴고, 결국 뇌물공여 혐의로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재판을 받고 있다.

◇ 지주사 전환 보류…새 변화도 =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된 이후 삼성그룹에 불어닥친 커다란 변화 중 하나는 미래전략실(이하 미전실)의 해체다.

삼성그룹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했던 미전실은 이 부회장이 기소된 날인 2월 28일 전격 해체됐다.

이 부회장이 작년 12월 국회 청문회에 출석해 공개적으로 밝힌 전경련 탈퇴와 미전실 해체 약속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미전실을 이끌었던 최지성 전 실장(부회장)과 장충기 전 차장(사장), 7명의 팀장은 모두 퇴사했다.

이들 중 누구도 삼성 계열사에서 자문역이나 고문역 등을 맡고 있지 않다.

삼성그룹 이름으로 관리되던 홈페이지나 블로그 등도 대부분 폐지됐다.

상반기 공채와 관련한 홈페이지만 열려 있다.

모든 공채 절차가 끝나면 이 또한 문을 닫는다.

매주 수요일마다 열리던 사장단 회의도 사라졌다.

미전실이 폐지된 이후 삼성 계열사들은 각사 이사회 중심으로 각자도생의 길을 걷게 됐지만, 당장은 혼선을 겪는 모양새이다.

매년 12월 미전실을 통해 발표됐던 사장단과 임원 인사가 5개월째 시행되지 못하고 있고, 조직개편도 미뤄지고 있다.

대부분 계열사가 현상 유지에만 급급해 하는 분위기다.

미전실 소속 임직원 중 적지 않은 수는 아직 보직을 받지 못하고 대기상태에 있다.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의 핵심인 삼성전자 지주회사 전환 작업도 보류됐다.

권오현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달 24일 정기 주주총회에서 "지주회사 전환은 지금으로써는 실행이 쉽지 않아 보인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삼성의 사회공헌 활동도 위축됐다.

종전에는 그룹이 각 계열사로부터 분담금을 거둬들여 다양한 기부활동 등을 했으나 미전실이 사라진 이후 계열사들이 관련 비용을 줄이고 있다.

특히 삼성전자는 10억 원이 넘는 기부금이나 후원금, 출연금 등을 낼 때는 반드시 이사회 의결을 거치고, 해당 내용을 공시하도록 규정을 바꿨다.

미르·K스포츠 재단 출연과 최순실 씨 모녀에 대한 '승마지원'으로 이 부회장이 구속되는 등 홍역을 치르고 있는 데 따른 반성에서 나온 조치다.

예전에는 자기자본의 0.5%(약 6천800억 원) 이상인 경우에만 이사회에서 집행 여부를 결정했다.

새로운 변화도 감지되고 있다.

삼성생명·화재·카드 등 금융계열사 임원들은 지난달 13일부터 출근 시간을 오전 6시 30분에서 8∼9시로 조정했다.

조기 출근제는 2012년 7월 미전실을 시작으로 전 계열사 임원이 시행해왔다.

하지만 금융계열사들은 고객과 거래처 일과와 맞추기 위해 조기 출근제를 4년 6개월 만에 폐지했다.

획일적인 조직문화에서 탈피하는 신호라는 해석이 많다.

삼성전자나 삼성디스플레이 등 주력사들이 삼성 계열사만 고집하지 않고 외부 업체들과 경쟁을 시켜 납품사를 선정하는 사례도 하나씩 나타나고 있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미전실이 해제되고 나서 각 계열사가 다소 혼란을 겪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간 그룹 차원의 결정에 의존하는 부분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라며 "각사가 이사회 중심의 경영을 정착해 나갈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고웅석 기자 freemong@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