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상법개정안, 득보다 실이 더 많다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발의한 상법 개정안은 ‘주주권 강화’를 위한 기업지배구조 개선이 주목적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 내용이 기업의 자주적인 경영권을 과도하게 침해하고 있을 뿐 아니라 외국 투기자본의 한국 진출 길을 열어 줄 가능성도 크다. 대표적인 사례가 감사위원 분리선임과 집중투표제 의무화 조항이다. 감사위원 선출 때 대주주 의결권을 3%로 묶으면 헤지펀드들이 자신에게 유리한 특정인을 쉽게 선임할 수 있다. 세계 그 어떤 나라, 특히 자본주의와 자유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 중에 이런 제도를 도입한 나라는 없다.

노조가 추천하는 근로자 대표를 사외이사로 의무적으로 선임하라는 조항은 경영권 침해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신속한 이사회 결정을 지연시키거나 부결시킬 우려가 크다. 또 소액주주가 이사 수만큼 한 사람에게 집중 투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1주 1의결권의 시장경제 원칙에 위배되는 규정이다. 이외에도 전자투표 의무화, 이사·감사 위원 분리 선임, 집중투표제의 정관상 배제 불가, 소액주주 추천 1인 사외이사 선임 의무화, 다중대표소송제 추가 도입, 자기주식 처분 무제한 허용 대신 처분 시 주주 균등배분 의무화 등은 모두 ‘도둑잡기 위해 야간통행을 전면 금지’하는 격이라고 볼 수 있다.

세계가 자국 기업의 활성화와 외국 기업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상법을 개정하거나 법인세율 인하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한국 국회가 이런 시류에 역행하는 조치를 추진하는 것은 자살행위와 다름없다. 세계 주요국의 법인세율 인하로 한국 법인세율 순위는 2014년 13위, 2015년 15위, 2016년 20위로 매년 떨어지고 있다.

주요국 법인세 인하율을 보면 미국은 35%를 15%(예정)로, 일본은 30%를 23.4%로, 영국은 20%를 17%로, 독일은 30%를 15%로, 스페인은 28%를 25%로, 이탈리아는 37%를 27.5%로, 캐나다는 28%를 15%로 인하했는데 이런 법인세율 인하는 기업의 투자와 고용을 증대시켜 경제성장률 상승을 가져온다. 인구 850만명인 스위스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중 하나가 된 비결은 네슬레, 로슈 등 10여개 대기업을 세계 150여개국에 진출케 해 큰 수익을 올릴 수 있도록 경제정책을 폈기 때문이다. 스위스의 법인세율은 21%에 불과하다.

한국은 자본주의 경제체제로 경제발전에 성공한 나라지만 최근 국내 정치권은 반(反)기업·반자본·반시장을 표방하는 일부 정치인들과 정치세력이 여론을 이끄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의 법인세율은 현재 22%인데 야당은 27~28%로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평균 법인세율은 23.19%다.

한국의 50여만개 기업 중 상위 10% 법인이 전체 법인세수의 96.78%를 부담하고 있는 사실을 사람들은 모르고 있다. 1960년대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 67달러를 2016년에 2만7561달러로 끌어올린 경제체제가 시장경제체제다. 최빈국이던 한국을 세계 12위의 경제선진국으로 만든 주체는 기업이다. 1960년대부터 다년간 연 10%대의 고도성장을 이끈 주체는 대기업이었는데 이들 대기업집단 중심의 경제활동이 세계화함으로써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같은 세계적 기업이 생겨난 것이다. 일부 대기업의 잘못만 보고 대기업을 ‘악한 경제집단’으로 간주해 재벌해체를 주장하는 정치인들이 있는데, 앞으로는 반기업·반시장 정치 대신 대부분의 대기업을 국부(國富)와 일자리를 창출하는 ‘필요한 경제집단’으로 인식하는 친(親)기업·친시장 정치를 지향해야 할 것이다.

김동기 < 대한민국학술원 부회장·고려대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