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목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은 서울 제약회관 집무실에서 “제약바이오산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정부의 파격적인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원희목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은 서울 제약회관 집무실에서 “제약바이오산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키우기 위해서는 정부의 파격적인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약사는 제약회사엔 영원한 ‘갑’이다. 의약분업 이후 약을 처방하는 의사의 힘이 더 세졌지만 일반인에게 약을 파는 유일한 창구인 약국은 제약회사에는 ‘넘사벽’(넘을 수 없는 4차원 벽)이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 지난달 초 약사 출신인 원희목 회장(63)이 취임했다. 올초 회장 후보 물망에 이름이 오르내릴 때만 해도 우려의 목소리가 없지 않았다. 갑(약사) 신분인 원 회장이 을(제약사) 입장을 제대로 대변하겠느냐는 염려에서였다. 하지만 이런 우려는 기대로 바뀌고 있다. 18대 국회의원을 지내며 쌓은 탄탄한 정관계 인맥과 특유의 추진력 덕분에 제약업계 현안을 제대로 풀 적임자라는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다. 원 회장은 “제약은 평생의 업(業)”이라며 “제약바이오산업이 미래 먹거리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우미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취임한 지 한 달이 지났습니다. 소감이 궁금합니다.

“예전부터 제약산업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왔습니다. 대한약사회 회장 등을 거치는 동안 국내 제약산업에 안타까운 점도 느꼈습니다. 국민 생명을 지키는 중요한 산업인데도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2008년 국회에 들어가 제약산업 육성법을 만들었어요. 제약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업계 목소리를 들어 정부에 전달하고, 업계 발전을 위해 다양한 장을 마련할 계획입니다.”

▷약사 출신 첫 제약바이오협회장인 만큼 감회가 남다를 듯합니다.

“원래 제 꿈은 세계적 의약품을 개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1977년 서울대 약학과를 졸업하고 곧바로 동아제약에 입사했죠. 대한약사회에서 일한 경력 때문에 제약바이오협회장을 맡는다고 하니 주변에서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어요. 두 기관의 역할이 다르다는 이유에서였죠. 하지만 저는 오래전부터 제약산업의 중심에 서 있었습니다. 국회의원 시절에는 제약산업 육성법을 직접 발의했습니다. 보건안보의 중심축인 제약산업을 키우지 않으면 안 된다는 믿음에서죠.”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의 현주소는 어딥니까.

[월요인터뷰] 원희목 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 "글로벌 신약 한 개만 나와도 제약강국…약값 인하 능사 아니다"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은 물 끓는 온도로 치면 70~75도쯤 됩니다. 끓는점에 도달하려면 더 달궈져야 합니다. 제약사의 연구개발(R&D) 투자액이 늘어나고, 신약 개발의 중요성이 강조된 것은 최근 몇 년 사이 일입니다. 단 한 건의 세계적인 신약만 나와도 한국은 단번에 신약 강국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부가가치가 생겨날 것입니다. 그러려면 정부의 제도적, 재정적 지원이 필수적입니다.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는 신약 개발은 아직 덩치가 작은 국내 제약사가 감당하기 쉽지 않습니다. 한미약품 등이 임상시험 3상을 직접 하지 않고 다국적 제약사에 기술이전을 할 수밖에 없는 실정입니다.”

▷국내 제약·바이오업계에는 시장을 이끌 대기업이 많지 않습니다.

“국내 제약사 중 매출이 1조원 이상인 곳은 세 곳뿐입니다. 업력이 70, 80년 이상인 제약사가 꽤 많지만 발전 속도가 더딘 편입니다. 산업이 발전하고 흐름을 타기 위해서는 제도적 지원 등 성장동력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 동력이 약한 탓에 기업들이 스스로 생존할 정도의 수준에 머물렀습니다. 그 결과 제약사는 복제약 위주로 사업을 펼쳤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리베이트가 만연했던 거죠. 게다가 정부가 약값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어 약값 인하 속도가 아주 빠릅니다. 이렇다 보니 제약사의 매출 대비 원가는 10년 새 48%에서 60%로 높아졌습니다. 제약사가 생존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급선무입니다.”

▷제약바이오산업을 키우려면 어떤 정책을 펴야 합니까.

“정부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올해 정부 R&D 예산은 19조4615억원인데 바이오 분야는 전체의 2.7% 수준인 5258억원에 불과합니다. 국내 총 제약바이오 R&D 투자액 가운데 정부 비중은 8%에 그칩니다. 바이오제약 신흥 강국으로 부상한 벨기에는 정부 R&D 투자 비중이 40%에 이릅니다. 특허세를 최대 80%까지 면제해주고 신약 임상허가는 2주 만에 초스피드로 내줍니다. 이스라엘 싱가포르 등도 제약바이오산업을 국부 산업으로 키우기 위해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있어요. 제약바이오 분야의 국가 R&D 투자 비중을 대폭 높여야 합니다. 게다가 제약사들이 신약 개발 등으로 벌어들인 수익을 다시 신약 R&D에 투자할 수 있도록 약값을 탄력적으로 인상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합니다.”

▷정부의 정책 지원이 매끄럽지 않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정부가 제약바이오산업을 차세대 먹거리로 정했다면 이에 맞는 산업적 지원을 해줘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부분이 부족하고 아쉽습니다. 제약바이오산업은 특성상 건강보험과 연결돼 있어 사회정책 범주에 들어갑니다. 또 제약바이오 업무가 여러 부처에 산재돼 있습니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의사결정을 내린다고 해도 미래창조과학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다른 부처들이 일사천리로 움직이기 쉽지 않습니다.”

▷컨트롤타워가 없다는 비판이 많았는데 같은 맥락인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지난달 취임하면서 정부에 제약바이오 정책의 효율성과 일관성, 부처 간 업무 조정을 위해 대통령 직속 제약바이오혁신위원회를 설치할 것을 건의했습니다. 이 위원회처럼 중심을 잡아주는 컨트롤타워가 생기면 여러 지원 정책이 힘을 받을 것입니다. 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 산업부, 미래부 등 부처 간 업무 조율도 훨씬 수월해질 것입니다. 신약 개발은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없습니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육성 정책을 펴야 합니다. 대통령이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지 않으면 육성 정책을 일관되게 지속하기가 쉽지 않은 분야입니다.”

▷컨트롤타워에 필요한 역할은 무엇인가요.

“부처 간 역할이 나뉘어 있는 정부 R&D 지원 제도를 개편해 초기 물질부터 임상, 제품화까지 전 주기에 걸쳐 신약 개발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생명윤리법 등 각종 규제와 보험약값제도 등도 제약바이오산업 세계화를 가속화하는 방향으로 다듬어야 합니다. 정부 간 통상협력, 세계 시장 동향과 대응 방안, 네트워크 구축 등 국내외 문제도 다뤄야 합니다.”

▷산업계가 해야 할 역할은 어떤 게 있습니까.

“국내 제약사의 문제점 중 하나는 신약을 만들 기초물질과 후보물질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세계 선두권 제약사인 노바티스는 한 개 건물 전체에서 신약 후보물질 연구만 하고 있을 정도로 연구조직 규모가 큽니다. 우리나라에도 신약 후보물질을 가지고 있는 바이오벤처기업이 많습니다. 오픈 이노베이션(바이오벤처 등에서 개발한 신약 기술을 대형 제약사 등이 사들여 임상 등을 거쳐 상업화하는 신약 개발 방식)을 통해 제약사와 바이오벤처기업이 힘을 합쳐야 합니다. 나아가 기업 간 인수합병(M&A)을 통해 기업 규모를 더 키워야 합니다. 국내에서는 M&A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하지만 해외에선 제약사 간 M&A가 수시로 일어납니다.”

▷협회의 활동 계획을 얘기해주십시오.

“최근 협회 이름을 한국제약협회에서 한국제약바이오협회로 바꿨습니다. 회원사 중 바이오신약을 개발하는 업체가 점점 늘어나고 있어서죠. 앞으로 제약사들이 바이오벤처기업이나 스타트업 등과의 협업을 확대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려고 합니다. 해외 바이오 포럼 등에 가면 참가 기업끼리 만나 대화하다가 제휴를 맺는 일도 생깁니다. 이런 성과가 더 많아지도록 제약사와 바이오기업이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장을 지속적으로 마련할 것입니다. 해외에 진출하는 기업에는 현지 시장 정보를 제공하는 등 실질적인 도움을 주려고 합니다.”

원희목 회장은

원희목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은 감성적 소통을 중시한다. 평소 주변 사람의 성격이나 버릇 등을 꼼꼼히 기억해뒀다가 대화를 풀어가는 소재로 쓴다.

원 회장은 강원 속초에서 작은 동네 약국을 운영하며 감성적 소통을 터득했다. 단골손님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약국을 찾는 손님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외우고 인상이나 질환 등 개인의 특징을 기록했다. 신뢰가 쌓이면서 입소문이 났고, 손님도 늘었다. 대한약사회 회장, 18대 새누리당 국회의원(비례대표), 한국보건복지정보개발원 원장 등을 지냈다.

△1954년 서울 출생 △1973년 용산고 졸업△1977년 서울대 약학대학 졸업 △2004년 대한약사회 회장 △2008년 제18대 새누리당 국회의원 △2013년 사회보장정보원 원장 △2017년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장

김근희 기자 tkfcka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