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서로를 인정하며 풀어야 할 세대갈등
칡을 뜻하는 갈(葛)과 등나무를 칭하는 등(藤)은 모두 다른 나무나 기둥을 휘감으며 성장하는데, 이때 칡은 왼쪽으로 감지만 등나무는 오른쪽으로 감아 올라간다. 갈등이란 이렇게 감는 방향이 다른 두 나무가 한곳에 자리 잡고 자라면서 서로 얽히는 어렵고 힘든 상황을 일컫는다.

안타까운 일은 지역, 노사, 이념 등 다양한 갈등에 발목이 잡혀 있는 우리 사회에 또 하나의 어려움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의 조사보고에 따르면 성인의 62%는 세대갈등이 심각한 문제라고 인식했는데, 이는 2014년의 56%보다 악화된 것이다. 노년과 청년세대 간의 갈등은 기나긴 인류사에서 어느 곳에서나 항상 존재했던 문제다. 하지만 오늘의 대한민국은 서양의 선진국들이 200여년에 걸쳐 이룬 산업화를 단 반세기 만에 이뤄낸 사회이기에 세대 간 사고방식 차이가 훨씬 더 클 수밖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으로 우리 사회의 갈등은 더욱 심화됐다. 물론 노년세대도 촛불집회에 참가하고 또 젊은이들도 태극기집회에 나섰지만, 이는 이념갈등이며 동시에 세대갈등이다. 한 공간에서 벌어지는 서로 판이한 대규모 집회를 보면서 갈등이 발화해 증오로 치달을 것 같은 두려움마저 느낀다. 6·25전쟁이 남긴 잿더미 위에서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이 인생의 최대 목표였던 오늘의 노년세대와 그에 비해 물질적으로는 모든 것이 풍족한 젊은이들이 같은 생각을 한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갈등해소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첫걸음이다.

안동혁 선생(1906~2004)은 1950년대 상공부 장관을 지낸 분이지만 그보다는 빼어난 화학자로 우리 학계의 보석 같은 분이었다. 이 분이 97세를 맞았을 때 ‘대한화학회’에서 학문 초창기의 소중한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대담을 갖고 이를 《우리 화학계의 선구자》란 제목으로 책을 펴냈다. 이 책에는 선생께서 지녔던 과학적 지식의 깊이는 물론이고 동서양을 망라한 철학적 사유, 그리고 무엇보다 그 연세에도 유지하고 계셨던 놀라운 기억력이 잘 나타나 있는데, 여기에 언급된 노년의 지혜를 아래에 그대로 옮긴다.

“내 생애가 남 보기엔 평탄했지만 죽을 고비를 여섯 번이나 넘겼어. 절반은 병으로 나머지는 사회변동 때문이었지. 친족 친지들이 거의 갔고 아들도 죽고 말았어. 그러니까 인간이 겪을 일을 제법 겪은 셈이지. 그래서 노경(老境)에 들어 삶의 다섯 지표를 도연명(陶淵明)에서 얻어 왔어. 이건 옛글을 읽은 사람은 모두 아는 거야. 그 다섯 가지는 1)형역(形役): 마음 내키지 않는 일은 하지 않는다. 당하더라도 무시해 버린다. 2)금시(今是): 현재가 옳다. 어제의 선입견을 고집하지 말고 오늘의 현실을 직시한다. 3)식교(息交): 친구, 선생, 제자들과의 교제를 사절한다. 4)운자(耘): 풀뿌리를 만지면서 나름의 마음을 가꾼다. 5)낙천(樂天): 주어진 것을 가지고 즐겨라.”

여기서 가장 눈에 들어온 것은 금시(今是)였는데, 아마도 벌써 1600여년 전의 도연명도 당시의 젊은 세대에 무척이나 실망했던 모양이다. 변화라곤 전혀 없었을 것 같은 세상을 살다가 60대 초반에 생애를 마친 위대한 시인(詩人)도 그랬으니 격변의 현대를 살아오면서 100세에 이르기까지 건강한 삶을 사는 우리의 노년세대가 젊은이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매우 당연하다.

하지만 확실한 사실은 지난 반세기 동안 대한민국이 이룩한 기적적인 발전은 세계 모두가 인정하고 상찬(賞讚)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대부분 젊은이들은 이를 간과하는 듯싶다. 적어도 반고시(半古是), 즉 옛날이 절반은 옳았다는 마음으로 젊은이들은 노년세대의 값진 경험에서 배울 점을 찾아야 한다. 노인들은 젊어도 보았지만 젊은이들은 아직 늙어보지 못한 사람들 아닌가. 젊음은 인생에서 배우는 시기이며 노년으로 들어서는 과정일 뿐이다.

김도연 < 포스텍 총장 dohyeonkim@postech.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