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기자 칼럼] 한복 입은 예수, 독일로 간 까닭은
2006년 제작된 미국 영화 ‘컬러 오브 더 크로스(Color of the Cross)’는 예수를 흑인 유대인으로 설정해 주목받았다. 같은 해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영화 ‘선 오브 맨(Son of Man)’은 예수를 현대 아프리카의 흑인 혁명가로 그려 제작 단계부터 논란이 일었다.

2014년에는 예수를 흑인 건달로 그려낸 미국 TBS의 코믹드라마 ‘흑인 예수(Black Jesus)’가 논란이 됐다. 이유는 간단하다. 고정관념 때문이다. 예수의 이미지는 하얀 피부에 금발, 파란 눈을 가진 미남형 유럽인으로 각인돼 왔다.

운보의 '한국인 예수'에 담긴 뜻

이런 고정관념을 일찌감치 깼던 이가 운보 김기창 화백(1914~2001)이다. 운보는 6·25전쟁 중이던 1951년 처가가 있는 전북 군산 농촌마을에서 피란 생활을 하는 가운데 ‘예수의 생애’ 연작 30점을 그렸다. 이 작품의 등장인물은 모두 한국인이다.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할 것임을 알려주는 ‘수태고지’ 장면에서 천사는 구름을 타고 온 선녀로, 마리아는 녹색 치마에 노란색 저고리를 입은 여성으로 그렸다. ‘최후의 만찬’ 장면에선 두루마기 차림에 갓을 쓴 예수가 열두 명의 한복 차림 제자들과 잔칫상에 둘러앉아 있다.

운보의 이 그림들이 오는 12일 베를린에서 개막하는 독일역사박물관의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루터 이펙트’ 기획전에 초대됐다. 박물관 측이 작품 소장자이자 서울미술관 설립자인 안병광 유니온제약 회장에게 대여를 요청해 7개월간 전시된다. 종교개혁 이후 다양한 모습으로 세계에 전파된 개신교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 기획전에 독일역사박물관은 왜 ‘황색인 예수’를 그린 운보의 작품을 초대했을까.

‘백인 예수’가 허구임은 이미 과학적으로도 밝혀진 상태다. 인종적으로 예수는 유대인과 같은 셈족이다. 지리적으로도 이스라엘은 아라비아반도, 이집트와 가깝다. 2001년 영국의 리처드 니브 맨체스터대 교수가 예수의 얼굴을 법의학적으로 복원한 결과도 그랬다. 담갈색 눈에 수염을 길렀고, 짧은 곱슬머리, 까무잡잡한 피부의 예수였다.

겉모습에 속지 말자

중요한 것은 예수의 가르침과 정신이지 겉모습이 아니란 점이다. 면벌부(免罰符·인간이 지은 죄의 대가로 치러야 할 벌을 면해준다는 뜻) 판매를 비롯한 당시 가톨릭 교회의 전횡을 비판했던 마르틴 루터의 기본 정신은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종교개혁 후 형성된 개신교는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이 땅에서는 불과 한 세기 남짓 만에 거대 종교로 성장했다. 지난해 말 통계청이 발표한 ‘2015 인구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개신교인은 967만여명으로 불교, 천주교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이런 한국 개신교가 목회윤리나 교회재정 등의 여러 문제로 ‘개혁’을 안팎에서 요구받고 있는 것은 참 역설적이다. 덩치가 커지면서 누적된 부조리가 ‘적폐’의 수준에 이르렀다는 얘기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이은 ‘장미대선’ 정국이 한창이다. 실패의 전철을 밟지 않는 길은 겉모습, 겉치레에 속지 않는 것이다. 미사여구(美辭麗句)에 휘둘려 본질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종교든 정치든 마찬가지다. 각자 점검하고 또 점검해 볼 일이다. 편견과 고정관념에 속고 있지 않는지, 사람과 세상을 바로 보고 있는지.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