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뿌옇고 휘어지고…황반변성 놔두면 눈앞이 '캄캄'
충북 청주에 사는 송모씨(74)는 요즘 부쩍 오른쪽 눈의 시야가 뿌옇다. 곧게 뻗은 욕실 타일이 휘어져 보이고 신문이 중간중간 뻥 뚫린 듯 시커멓게 보이기도 한다. 얼마 전 일본에서 줄기세포를 활용한 이식수술이 시행됐다는 난치병 환자와 비슷한 증세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송씨는 안과병원을 찾았다. 진단 결과는 ‘노인성 황반변성’이라는 질환이었다. 의사는 “시력을 잃을지도 모르니 하루빨리 치료해야 한다”고 했다.

송씨와 같은 노인성 황반변성을 앓는 환자가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황반변성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14만5018명으로 4년 전에 비해 50% 증가했다. 황반변성은 유전적 요인, 환경적 요인, 고도근시 등 다른 원인도 있지만 주로 노화로 인해 발생하기 때문에 노인성 황반변성이 대부분이다. 지난해 황반변성 환자의 82%가 60세 이상이었다. 국립보건연구원 희귀난치성질환센터에 따르면 65세 이상 인구의 10%가량이 노인성 황반변성을 앓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조한주 건양의대 김안과병원 교수는 “한국은 아직 아니지만 서양에서는 황반변성이 실명 원인 중 1위”라며 “식습관이나 생활습관이 서구화된 게 황반변성 환자 증가에 한몫했다”고 분석했다. 또 “황반변성이라는 질환이 국민들에게 널리 홍보된 것도 이유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우리가 사물을 볼 수 있는 것은 망막 덕분이다. 애플이 만든 고화질 디스플레이 이름을 영어로 망막을 뜻하는 ‘레티나’로 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망막에서도 시세포가 가장 집중돼 있는 부분이 황반이다. 노인성 황반변성은 나이가 들면서 이곳에 이상이 생기는 질환을 말한다. 송씨의 사례처럼 시력이 저하되고 물체가 찌그러져 보이는 증세가 나타난다. 심각하면 실명까지 이어질 수 있다.

조 교수는 “황반만 괜찮으면 다른 망막이 전부 상해도 시력은 살아있지만 다른 망막이 다 괜찮아도 황반에 문제가 있으면 실명할 수 있다”며 황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모든 노인성 황반변성이 실명까지 이어지지는 않는다. 노인성 황반변성은 건성과 습성으로 나뉜다. 환자의 80~90%를 차지하는 건성은 망막 주변에 노폐물이 쌓이고 망막의 기능을 유지해 주는 망막색소상피가 위축돼 발생한다. 시세포 위축이 서서히 진행되기 때문에 시력 저하도 천천히 진행된다. 반면 습성은 황반 근처에 새로운 혈관이 자라나 생긴다. 이 혈관은 쉽게 터지는데 출혈과 함께 염증을 동반해 몇 주 되지 않아 시력이 급격히 저하되고 심하면 실명에 이를 수 있다.

황반변성은 완치는 어렵지만 상태 악화를 막기 위해서라도 초기에 치료해야 한다. 한 번 손상되면 회복이 불가능한 신경세포의 특성 때문이다. 망막은 손상되면 되돌릴 수 없다.

박운철 서울대병원 안과 교수는 “습성인 경우에는 정기적으로 눈에 항체주사를 맞아 혈관이 새로 자라나는 걸 막아야 한다”며 “건성인 환자도 습성으로 변형될 수 있기 때문에 자외선을 피하고 금연을 하는 등 생활습관 교정과 함께 항산화영양제를 복용해 잘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교수는 “초기 황반변성은 증세가 없는 경우도 있다”며 “50세가 넘으면 최소 1년에 한 번씩은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