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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묻자 "삼성전자 부회장"…국회 청문회 때처럼 립밤 발라
이재용 변호인단 8명 vs 박영수 특검팀 7명, 법리 싸움 '팽팽'


박근혜 전 대통령과 '비선 실세' 최순실(61)씨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이 7일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부회장은 이날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김진동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1차 공판에 피고인 신분으로 나왔다.

그가 피고인 신분으로 법정에 서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 부회장은 수의 대신 흰색 와이셔츠에 회색 정장 차림으로 법정에 나왔다.

이 부회장은 다소 수척해진 얼굴로 수용자 대기실을 나와 법정 내 피고인석까지 걸어갔다.

형사 재판이 생소한 만큼 굳은 표정으로 방청석과 법정을 둘러보기도 했다.

함께 기소됐지만,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진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 박상진 전 삼성전자 대외담당 사장, 황성수 삼성전자 전무는 미리 피고인석에 앉아서 이 부회장을 맞았다.

이 부회장은 재판부가 직업을 묻자 "삼성전자 부회장입니다"라고 또렷이 말했다.

인적 사항 등을 확인하는 인정신문이 끝난 뒤 재판 절차에 따라 박영수 특검팀의 공소사실 낭독이 이어졌다.

특검팀에서는 박영수(65·사법연수원 10기) 특검 본인을 비롯해 양재식(52·21기) 특검보, 윤석열(57·23기) 수사팀장 등 모두 7명이 나왔다.


직접 재판에 나온 박영수 특검은 "한 마디로 우리 사회에서 가장 고질적이고 전형적인 정경유착 범죄"라며 수사의 의미를 먼저 밝혔다.

이어 박주성 검사가 공소사실의 요지를 설명하고, 양재식 특검보가 주요 쟁점들을 소개했다.

특검이 1시간이나 공소사실을 읽어내려가는 동안 이 부회장은 피고인석에 설치된 컴퓨터 모니터 화면을 가만히 응시했다.

별다른 표정 변화를 보이진 않았지만 가끔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속이 타는 듯 책상 위 종이컵에 담긴 물을 조금씩 몇 차례 마시기도 했다.

주머니에서 회색 스틱형의 립밤을 꺼내 손으로 입을 가리고 바르는 모습도 몇 차례 포착됐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12월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했을 때도 답변 중간중간 립밤을 발랐다.

이 부회장의 변호인단으로는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들을 주축으로 8명이 출동했다.

대법관들의 재판 법리 검토를 보좌하는 책임자인 선임재판연구관에 이어 수석재판연구관까지 지내 법리에 해박한 것으로 정평이 난 고법 부장판사 출신의 송우철(55·16기) 변호사와 판사 출신 문강배(57·16기) 변호사, 이용훈 전 대법원장 비서실장을 지낸 판사 출신 김종훈(60·13기) 변호사가 직접 자리했다.

변호인단도 특검 측과 마찬가지로 프리젠테이션 자료(PPT)를 만들어 1시간가량 혐의사실을 조목조목 반박해 나갔다.

변호인단은 특검의 공소사실이 "추측과 비약으로 가득 찼고, 예단과 선입견에 기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송 변호사는 ▲ 사건의 실체는 문화융성과 체육발전을 명목으로 한 박 전 대통령의 요청에 따른 대가성 없는 지원이자 기업의 정상적 활동이었을 뿐 경영권 승계와는 무관 ▲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독대 내용이 확인되지 않았고 어떤 합의도 없었으며 당사자는 이를 부인하는데 근거 없이 마치 직접 대화를 확인한 것처럼 공소사실을 구성한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 재단에 기금을 출연한 다른 대기업들은 강요 피해자로 규정했지만 삼성만 뇌물 공여자로 규정한 것은 동일한 행위에 대해 다른 평가를 내린 것이어서 이는 예단을 갖고 수사한 것으로 법리 적용이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변호인단의 설명을 듣던 이 부회장은 옆자리에 앉은 변호사와 짤막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이날 재판은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 가장 큰 417호 대법정에서 열렸다.

재판에는 취재진과 방청객이 몰려 150석을 모두 메웠다.

(서울연합뉴스) 송진원 황재하 기자 s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