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한미FTA 5년, 제약산업으로 '윈윈'하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발효된 지 5년이 경과했다. 2011년 1265억달러 규모의 양국 간 재화와 서비스 무역은 2015년에 1500억달러로 증가했다. 미국 트럼프 정부의 한·미 FTA에 대한 평가는 ‘냉·온탕’을 오가고 있다. 지난달 1일 미국무역대표부(USTR)가 발간한 ‘무역정책아젠다보고서’는 미국의 무역적자에 방점을 찍으며 한·미 FTA 재협상을 시사했다. 한 달 뒤 발표된 ‘무역장벽보고서’는 “한·미 FTA 협정이 미국의 아시아 내 핵심 전략 파트너와 유대를 강화하는 한편 미국 수출업체를 위한 한국의 사업 환경을 개선했다”고 긍정 평가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이다. 그는 지난달 31일 피터 나바로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 등 강경파가 배석한 가운데 2건의 ‘무역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무역적자의 원인을 국가별·상품별로 면밀히 파악해 반덤핑관세와 상계관세 강화 방안을 검토하라는 것이다. 미국 근로자를 위한 ‘평평한 운동장’을 만들겠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한·미 FTA가 ‘윈윈’이 되기 위해서는 미국으로부터의 수입을 늘리되 한국의 산업 발전에 요긴한 지렛대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양국의 협력 기회 확대 방안으로 제약산업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글로벌 신약 개발에 성공하는 경우 고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해 그 자체가 신(新)성장동력이다. 소국 스위스가 8만달러의 국민소득을 유지하는 데는 제약산업의 기여가 결정적이다.

2012년 기준 세계 제약시장 규모는 1000조원으로 자동차 600조원, 반도체 400조원을 합친 규모다. 2016년엔 1400조원 규모로 성장했으며 미국의 점유율은 31%다. 2012년 세계 20대 제약회사 중 미국계가 8개다. 반면 우리의 위상은 미미하다. 국내 의약품 시장 규모는 19조원 규모로 1100조원에 이르는 세계 제약시장(2013년 기준)의 약 1.7%에 불과하다. 한·미 간 협력이 우리에게 불리할 이유는 없다.

제약산업은 블루오션의 잠재력을 갖고 있지만 전략적 접근이 부재했다. 보건복지부는 2016년 7월 ‘약가 개선 및 의약품·의료기기 글로벌 시장 진출 전략’을 모토로 ‘7·7 약가정책’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글로벌 진출 신약 우대 △신약 개발 1·2상만 적용하던 연구개발(R&D) 세액공제 대상을 3상까지 확대 △임상적 유용성이 개선된 ‘글로벌 혁신 신약 개발’에 대한 대체 약제 10% 가산 등이다.

인센티브를 보강함으로써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렵다. 글로벌이란 단서를 달았지만 국내 개발 신약에 국한된 혜택은 국내 산업 위주의 편향된 프레임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국산약 살리기’ 정책도 구시대적 발상이다. 의약품 수입이 많은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국내 제약기업들의 R&D 투자 여력이나 신약 개발 역량을 짚어보지 않은 채 보호하는 것은 국내 산업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신약 개발은 조(兆) 단위의 막대한 자본과 10년 이상의 긴 개발 과정을 요하기 때문에 제약산업을 발전시키려면 ‘긴 호흡’을 가져야 한다. 시장을 통해 이 같은 프로젝트가 조직돼야 하기 때문에 위험 분산은 필수적이다. 기업, 대학, 연구소 등이 참여하는 ‘개방형 혁신’이 확산되는 이유다. 글로벌 제약사와 국내 제약사의 개방형 혁신은 우리나라 제약·바이오산업의 성장과 글로벌 시장 진출을 위한 유효한 발판이다.

양국 간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국내 기업에만 우호적인 비관세장벽 등 제도 적용의 유혹을 뿌리쳐야 한다. R&D 투자에 대한 유인과 보상도 글로벌 제약사와 국내 기업에 중립적으로 작용해야 한다. 그 길이 국내 제약산업의 경쟁력을 키우고 대외적인 무역마찰의 위험도 줄일 수 있다.

정부 의지대로 산업이 육성되지 않는다. 근시안적 이익 보호보다 공정한 보상과 혁신이 이뤄지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시장의 역동성이 살아나고 제약·바이오산업이 성장하고 일자리도 만들어진다. 한·미 FTA의 윈윈 구조도 튼실해진다.

조동근 < 명지대 교수·경제학 / 객원논설위원 dkcho@mj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