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사흘 못 본 사이의/벚꽃.

[지갑 털어주는 기자들] 흩날리는 벚꽃 아래 한 잔, 너의 얼굴도 붉어졌다
일본 전통시 하이쿠의 한 구절입니다. 료타라는 시인이 썼지요.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라 불리는 하이쿠. 짧지만 여운은 깁니다.

어릴 땐 4월이 싫었습니다. 여의도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벚꽃 보겠다고 몰려드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벚꽃은 사진으로나 보는 게 제일 좋지”라고 까칠하게 굴었습니다. 지금은? 정반대죠. 바쁘게 살다 보니 1년 지났다고 꼬박꼬박 알려주는 건 그저 봄꽃뿐. 벚꽃처럼 봄이 온 걸 화려하게 알리고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꽃놀이 한번 제대로 못하고 지나간 봄이란 왜 또 그리 섭섭한지.

이번 주말은 그래서 나들이 채비를 해봅니다. 사흘 못 본 사이 사라질 그 벚꽃을 보려고요. 윤중로는 제쳐놓고 숨은 명소를 찾아가 볼까 합니다. 아, 벚꽃놀이에 빠질 수 없는 아이템도 있지요. 살랑살랑 봄바람 맞으며 벚꽃 아래서 마시는 수제맥주. 요즘 맥주를 바로 뽑아 캔으로 만들어주는 곳이 많아졌답니다.

첫 번째 소개할 곳은 ‘맥주 덕후(마니아)’ 사이에선 이미 유명한 곳. 서울 방배동 ‘캔메이커 바이 크래프트브로스’입니다. 맥주 종류는 40여 가지. 강남페일에일과 코스모스IPA 등 자체 맥주가 수준급입니다. 테이크아웃 하면 순식간에 캔맥주로 만들어줍니다. 매장에서 먹는 것보다 2000원이나 쌉니다. 문 여는 시간은 평일 오후 6시, 토·일요일은 오후 3시부터. 맥주캔을 장착하고 갈 곳은 방배동 삼호아파트입니다. 반포천변을 따라 이수교차로까지 조금 걷다 보면 삼호아파트 단지가 나옵니다. 이 안의 거대한 벚꽃 터널은 그야말로 장관이지요.

서울 연희동의 ‘케그 스테이션’(사진)도 좋아합니다. 양조장과 수제맥주 펍을 운영하던 대표가 수제맥주 테이크아웃 전문점을 열었습니다. 테이스팅 사이즈(300cc)부터 파티 사이즈(1500cc)까지 용량도 다양하죠. 좋아하는 취향을 말하면 어울리는 맥주를 시음도 할 수 있답니다. ‘밀당’ ‘설레임+’ ‘아이홉소’ ‘노이어’ 등 다양한 맥주를 페트병에 담아줍니다. 여기서 맥주를 골랐다면 서대문구 안산 자락길 7㎞ 걷기 코스를 추천합니다. 서울을 벗어나고 싶다면 일산 자유로에 있는 플레이그라운드 브루어리에 꼭 가보시길. 양조장과 펍이 함께 있는 곳이죠. 맥주마다 하회탈 캐릭터 이름을 붙여놓았습니다. ‘더 젠틀맨-양반탈’ ‘더 미스트리스-각시탈’ ‘더 위치-할미탈’ 등으로요. 테이크아웃은 1000mL의 캔으로만 할 수 있습니다. ‘맥알못(맥주 알지 못하는 사람)’을 만족시킬 쿠바 샌드위치와 타코, 치킨 등도 있습니다. 벚꽃은 언제 보냐고요? 차로 10분 거리의 호수공원으로 가보시길.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