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tty Images Bank
Getty Images Bank
정치권에서 ‘가맹사업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이하 가맹사업법) 개정안 발의가 이어지고 있다. 최근 1년 사이 20건이나 쏟아졌다. 하나같이 프랜차이즈 기업(본사)인 가맹본부를 규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 가운데 ‘징벌적 손해배상’ 조항을 담은 개정안은 이미 지난달 3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가맹본부가 허위·과장 정보를 제공하거나 상품·용역의 공급 또는 지원을 중단했을 때 최대 3배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밖에 19개 개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프랜차이즈 업계는 발칵 뒤집혔다. 고용불안과 물가인상 등으로 영업 환경이 악화되고, 내수경기가 좀처럼 살아나지 않아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규제만 잔뜩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최영홍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한국유통법학회장)는 “프랜차이즈 시장의 양대 축인 가맹본부와 가맹점은 상생관계가 기본인데, 정치권은 이를 갑을관계 또는 노사관계로 규정하고 규제의 칼날을 들이대고 있다”며 “경제민주화와 반기업정서를 배경으로 분쟁의 불씨를 제공하는 정치권의 입법행위가 프랜차이즈 가맹본부와 가맹점의 동반 몰락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앞다퉈 기업 발목잡기 나서는 정치권

[기로에 선 프랜차이즈 산업] 쏟아지는 '규제 폭탄'…'벼랑 끝' 프랜차이즈
이번에 국회를 통과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는 그동안 프랜차이즈산업을 위축시킬 수 있는 과도한 규제라는 지적을 받아온 법안이다. 프랜차이즈 가맹본부가 가맹 사업자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했거나 상품·용역의 공급 또는 지원을 중단했을 경우 최대 3배의 손해배상을 해야 하는 게 주요 내용이다. 전문가들은 징벌적 배상제 효과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이 제도로 기업의 불법행위를 억제할 수 있다는 근거가 없다는 의견이 많다.

또 국내 법체계와 상충한다는 지적도 있다. 최대 3배라는 징벌적 배상은 ‘실제 손해가 발생한 곳에 배상이 있다’(실손해배상)는 국내 민법 체계를 흔드는 것이고, 헌법상 과잉금지와 이중처벌 금지원칙에도 위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문제로 국내와 비슷한 법체계를 따르고 있는 독일 등에서는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포기했다.

현재 발의된 법안은 이뿐 아니다. 가맹계약서에 필수적 구매물품을 일일이 기재토록 하는 필수적 구매물품의 부당한 구매강요 방지를 위한 개정안, 가맹본부가 광고·판촉행사 실시 전 가맹점사업자의 사전동의를 의무적으로 받도록 한 개정안, 가맹점사업자에게 단체교섭권을 주는 개정안 등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가맹점사업자에게 힘을 실어주려는 취지의 개정안 내용을 보면 가맹점사업자의 계약갱신요구권 행사기한(현행 10년)을 아예 삭제해 평생 가맹점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한 개정안, 가맹점사업자단체에 가맹사업거래 일시정지권을 부여하는 개정안 등이 국회 통과를 기다리고 있다.

규제 입법으로 프랜차이즈산업 벼랑 끝

프랜차이즈업계에선 이 같은 규제 입법이 가맹계약의 본질인 상생 원칙을 훼손시키는 행위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명훈 프랜차이즈협회 상임부회장은 “가맹점 매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점주의 역량 차이인데 가맹점의 손해액을 가맹본부가 물어주라는 것은 프랜차이즈업의 본질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것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2013년 법 개정 때도 철회된 사항”이라고 지적했다.

가맹점사업자단체에 단체교섭권과 가맹사업거래 일시정지권(일시휴업권)을 부여하는 개정안은 업계의 현실과 동떨어진 입법의 단적인 사례라는 지적도 나온다. 최 교수는 “가맹점사업자단체가 협의를 요청하면 가맹본부가 반드시 협의에 응하도록 하는 단체교섭권은 가맹본부와 가맹점의 관계를 노사관계로 오해하는 정치권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가맹점사업자단체에 일시휴업권을 부여하자는 개정안도 가맹점주를 개인사업자가 아닌 가맹본부의 지시를 따르는 노동자로 혼동한 것으로 현실과 맞지 않는 입법”이라고 평가했다.

업계는 100조원대의 프랜차이즈 시장이 정치권의 포퓰리즘 입법으로 고사 위기에 처했다며 초조해하고 있다. 박기영 한국프랜차이즈산업협회장은 “대립과 갈등을 부추기는 입법보다는 산업을 진흥하는 데 도움을 주는 법안이 쏟아져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 간절하다”고 호소했다.

노정동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