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작은 것은 아름답지 않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구속된 후 뉴욕타임스, CNN 등 온 세계 미디어가 한국 제1의 재벌이 정치적 특혜를 사려고 3600만달러의 뇌물을 공여한 혐의로 구속됐음을 크게 보도하고 있다. 이런 뉴스를 통해 한국은 아직 대기업과 정권이 뇌물과 특혜를 거래하는 3류 국가, 삼성은 뇌물로 반칙적 무역이익을 얻는 불공정 거래자라는 인식이 세계에 전파된다.

한국에서는 삼성과 같은 글로벌 대기업들이 국가 행사에 스폰서로, 사회단체에 기부자로, 기타 무수한 준조세와 기부찬조로 뜯기다가 이런 봉변을 흔히 당한다. 이들이 다른 나라에 있었다면 이런 행위를 사서 할 일이 없었을 것이다. 삼성은 ‘세계 1등’의 전자·반도체 회사이며, 대한민국을 상징하는 기업이다. 그런 기업이 겪는 지금의 ‘관재(官災)’는 향후 우리 대기업들에 닥칠 정치·사회적 환경이 얼마나 각박할지를 예시한다고 하겠다.

한국은 ‘대기업은 악(惡), 중소기업은 선(善)’이라는 인식구조가 특별히 뿌리박힌 나라다. 우리 국민은 올림픽 금메달, 노벨상 같은 세계 1등을 갈망하며 그 수상자의 노력과 성취에 칭찬과 환호를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세계 1등 대기업들은 마치 공짜로 생긴 선물로 생각한다. 따라서 회사를 행운의 독식자로 여겨 기업과 기업주를 감시·제재하고 그 이익을 사회에 환원시킴을 정의로 인식한다.

이렇게 대기업체의 성과는 시기·폄하하고 중소영세업체의 위치는 치켜세우는 풍조가 형성됐다. 이는 지난 수십년간 사회 각 분야에서 한국 좌파들이 반(反)시장·반기업·반자본적 세계관을 꾸준히 전파한 결과다. 이번 대선에서도 보수·진보 할 것 없이 후보들은 재벌개혁, 경제민주화, 동반성장 같은 공약들을 주무대에 올리고 있다.

이들에게 ‘작은 것은 아름답지 않다(Small is not beautiful)’는 영국 ‘이코노미스트’의 칼럼을 소개한다. “영리한 정치가들이 작은 자들을 챔피언으로 만든다. 그러나 작은 기업 숭배는 경제현실과 상반되는 것이다. 대기업들은 대체로 소기업보다 생산성이 높고 임금이 높고 세금을 더 많이 낸다. 그래서 소기업들이 지배하는 경제는 자주 침체한다. 그리스, 이탈리아, 포르투갈 등 유로지역 남쪽 국가들은 성가신 규제 덕분에 슬프게도 성장에 실패한 많은 소기업을 가지고 있다. 이들의 종업원 250명 이상 제조업체의 고용비중은 독일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이런 큰 사업체 부족이 생산성 정체와 경쟁력 상실로 연결돼 유로지역 위기의 근본적 원인이 된다. 소기업에 대한 모든 선전광고에도 불구하고 최고의 생활수준을 유지시켜 주는 것은 대기업을 많이 가진 경제인 것이다. 대기업은 규모의 경제를 수확할 수 있다. 규모는 혁신을 배양하는 전문화를 허용한다. 월마트 같은 악명 높은 대규모 슈퍼마켓은 골목상점보다 낮은 가격으로 다양한 고품질 상품을 제공한다. 유럽에서 종업원 250명 이상의 제조업체는 10명 미만의 영세기업보다 30~40% 이상 생산성이 높다. 그리스에서는 영세기업이 보편적이나 독일에서는 희귀하다는 사실은 많은 의미를 말해준다.”

국가가 대기업을 멸시하고 중소기업정책에 ‘올인’하면 나라는 작은 기업으로 가득 찰 수밖에 없다. 그러나 중소기업만으로 영위되는 ‘강하고 생활수준 높은 경제’란 존재할 수 없다. 특히 우리 같은 무(無)자원 세계 최고의 인구밀집국가에서 대기업의 국제경쟁력이 사라진다면 어떤 ‘재난(災難)의 경제’가 초래될지 누구라도 상상이 가능한 일이다.

한 분야에서 개인이 세계 정상에 오르려면 그만큼의 타고난 재질, 노력, 주변 여건을 지니고 무수한 위험과 실패를 겪어야 한다. 대기업도 무수한 투자위험 속에 살아남고, 수많은 실패자와 낙오자가 탈락하는 과정 속에 그들만의 혁신능력과 경쟁력을 발휘함으로써 오늘날 존재하는 것이다. 향후 한국이 대기업 없는 국가로 이행한다면 누구보다 그 결과를 오랫동안 감수해야 할 자가 자신들임을 다음달 대통령 선거 투표장에 나가는 청년들은 알아야 한다.

김영봉 < 중앙대 경제학 명예교수 kimyb5492@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