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열의 데스크 시각] '미국 기업인' 머스크가 부럽다
전기자동차 기업 테슬라를 창업한 엘론 머스크는 ‘왕따 천재’였다. 스냅사진 찍듯 기억하는 뛰어난 능력을 가졌다. 몰입감이 얼마나 대단한지 한 번 생각에 빠지면 누가 옆에서 어떤 짓을 해도 모른다고 한다.

어린시절 또래들이 주변 세계를 탐색하며 자아를 형성할 시기에 그는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는 우주관을 키웠다. 친구들과는 도무지 어울릴 수 없었다. 고등학교 때는 학교 계단에서 친구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았다. 얼굴은 피범벅이 됐고 코뼈가 내려앉았다. 폭행을 지켜본 동생은 형이 죽는 줄 알았다고 했다.

기업가정신 꽃피운 ‘왕따 천재’

머스크는 자신의 상상력을 공감하고 인정해주는 곳을 갈망했다. 어머니를 설득해 태어나고 자란 남아프리카공화국을 17세 때 떠났다. 우여곡절 끝에 캐나다를 거쳐 미국에 정착했다. 얘기가 통할 수 있었던 곳은 실리콘밸리였다. 물을 만난 천재는 도전적이고 열정적인 기업가정신으로 빛을 발했다. 기발한 상상력에 토대를 둔 사업 비전, 비전을 현실로 만들어내겠다는 신념과 집념이 추진력이었다.

머스크는 남들이 실현 가능성을 비웃는 동안 전기차를 상용화해 기존 자동차업계를 선도하고 있다. 우주여행과 우주식민지 건설의 꿈은 재활용 로켓 발사 성공으로 그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최근엔 컴퓨터와 인간의 뇌를 연결하는 사업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전기차와 재활용 로켓 실용화를 목격했기에 세계는 다시 그를 주목한다.

혁신에 목마른 중국 기업인들은 머스크가 부러움 자체다. 스마트폰 업체 샤오미를 창업한 레이쥔은 말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 걸 하고 있다. 머스크는 아무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다”고. 중국판 페이스북 런런 창업자인 저우첸도 가세했다. 머스크는 일반적인 천재가 아니라 세상에 없는 걸 만들어낸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머스크가 생각하는 걸 생각할 수 있고, 머스크가 하는 걸 할 수 있는 사람을 꼽으라면 이 세상에 열 명이 안 된다”고 부러워했다.

기업인에게 귀 열어둔 지도자

머스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 ‘밀착’ 관계는 기업인들에게 질투심마저 불러일으킬 만하다. 머스크는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자문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트럼프가 기업인 출신이어서 팔이 안으로 굽었다고 치부하면 속좁은 시각일 수 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노회한 기업인(71) 출신이면서도 아들뻘인 기업가(46)에게 지혜를 구하는 용기와 용인술을 눈여겨봐야 한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 때 실리콘밸리 기업인 대부분은 트럼프 후보를 반대했다. 머스크는 실리콘밸리와 트럼프를 화해시키고, 실리콘밸리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언로 역할을 자임했다. 국가 최고경영자에게 혁신 아이디어와 비전을 공유할 수 있는 ‘특전’을 얻은 머스크가 감사해야 할 일이다.

한국에서 머스크의 천재성이나 혁신성보다 이런 역할이 더 큰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건 서글프다. 우리 기업인들은 그저 권력의 전시행정에 동원되기 일쑤였다. 청와대로 불려들어가 오찬이나 만찬을 한 뒤 어김없이 투자계획을 발표해야 하는 굴레가 씌워졌다.

머스크가 한국 기업인이라면 그에게 기꺼이 귀를 열어줄 국가 지도자가 나타날지 모르겠다. 줘도 패고, 안 줘도 패는 기업하기 힘든 환경에서 그가 교도소 담장 위를 걷지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김홍열 국제부장 com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