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지난 27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 무대에 선 박상우 LH(한국토지주택공사) 사장은 LH 전도사였다. 이날 열린 ‘LH 기업·채용설명회’에서 그는 ‘LH의 구석구석을 보여드리겠다’며 한 시간 동안 LH를 소개했다. 무선 마이크를 착용하고 손짓을 섞어가며 쉴 새 없이 발표하는 그의 모습은 애플의 신제품을 공개하기 위해 무대에 선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주를 연상시켰다.

박 사장의 주제와 목표는 선명했다. ‘우리가 알고 있던 LH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고 혁신해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공기업이 되겠다’는 것이다. 행사에 앞서 한 인터뷰에서 박 사장은 변화와 혁신을 강조했다.

▷LH가 개별 채용박람회 및 기업설명회를 개최하는 게 이례적입니다.

“취업준비생들이 공기업을 선호하는 만큼 우리도 더 많은, 더 좋은 인재를 영입하고 싶습니다. LH는 어떤 회사고 어떻게 변해가는지, LH가 원하는 인재상은 어떤지 알려주는 게 당연합니다. 올해 LH는 청년 일자리 창출에 적극 동참하기 위해 작년보다 채용 인원을 대폭 늘렸습니다. 고졸 공채 20%를 포함해 총 212명의 신입사원을 선발합니다.”

▷취임 1주년을 맞았습니다.

“1985년 옛 건설부(국토교통부) 주택토지실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산하 공기업인 LH의 사정을 비교적 잘 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와 보니 의외로 LH의 역할과 역량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많더라고요. LH를 막연하게 임대주택만 짓는 회사로 아는 국민도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LH를 더 많이 알리고 더 많은 지방자치단체, 민간 기업, 개인들과 협력하고 싶습니다.” (그는 국토부 주택토지실장, 기획조정실장 등을 지냈다.)

▷대선이 LH의 임대주택 확대 정책에 영향을 줄까요.

“임대주택 정책은 탈(脫)정파적입니다. 어느 정권이든 저소득층과 서민을 위한 주거복지가 중요하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겁니다. 부동산을 소유하는 문제에선 진보 혹은 보수 정권에 따라 정책방향이 달라질 수 있지만 주거복지 정책에는 정파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정권에 따라 임대주택에 무게를 더 두느냐, 덜 두느냐 하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임대주택 공급과 주거복지를 확대하겠다는 방향에선 모두 같습니다.”

▷임대주택 정책은 어떻게 변해왔습니까.

“정권과 관계없이 임대주택 정책은 자체적으로 진화했습니다. 과거에는 도시 외곽에 대규모로 임대주택을 짓고 소득 수준을 따져 공급했습니다. 이제는 더 도심으로 들어와 대학생이나 신혼부부, 사회초년생, 노년층, 저소득층 등 여러 계층과 그룹을 겨냥해 맞춤형 임대주택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공공임대주택 수를 늘려가고 주거복지 대상을 확대하겠다는 원칙엔 변함이 없습니다.”

▷LH는 비교적 많은 부채를 안고 있습니다.

“임대주택 공급, 세종시와 혁신도시 개발 등 정부가 추진하는 국책사업들을 충실히 시행하는 게 LH의 본분입니다. 이 과정에서 ‘영광의 상처’인 빚이 불어난 것도 사실입니다. 공공임대주택 입주민들이 낸 보증금(19조~20조원), SOC 인프라(사회간접시설) 건설 및 여러 사업비 충당금 등도 모두 총부채에 포함됩니다. 그래도 지난 3년간 총부채를 133조원, 금융부채를 83조원(2016년 말 기준) 수준으로 줄였습니다. 민간의 자본과 최신 금융기법을 끌어들여 본연의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면서 부채 규모도 줄였습니다.”

▷총부채 9조원, 금융부채 23조원을 줄인 비결은 무엇입니까.

“전국 414개 지구, 425조원 규모로 추진하던 전국 사업 규모를 211개 지구, 239조원대로 구조조정했습니다. LH의 재무역량 범위 내로 조정한 것입니다. 사업방식도 다각화했습니다. 과거엔 LH가 직접 돈을 빌리거나 채권을 발행해 단독으로 짓고 공급했습니다. 이젠 수익률을 보장하고 리스크는 분담하는 방식으로 민간자본을 유치하고 있습니다. 민간기업 및 지자체 등과 공동사업을 통해 LH 자체 사업비를 줄이는 한편 다양한 판촉 노력으로 토지판매 실적은 늘렸습니다. 안 팔리는 땅을 리폼하고 찾아가는 설명회, 판매조건 유연화를 통해 토지 판매실적을 2009~2012년 연평균 18조원에서 최근 4년(2013~2016년) 26조원으로 늘렸습니다. 직원들의 뼈를 깎는 희생도 있었습니다. 임직원의 임금동결(2009~2010년, 118억원)과 임금반납(2010년·2011년·2014년, 286억원)이 있었습니다. 복리후생비도 1인당 36%(641만원→408만원)씩 삭감했습니다.”

▷경영환경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저성장과 저출산, 급속한 고령화는 LH뿐 아니라 국가 전체가 당면한 숙제입니다. 우리도 문화·관광업 등 여러 서비스업을 더 육성하고 오래된 산업기반시설과 구도심을 새롭게 재생해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합니다. 외국 사례를 봐도 낙후된 도심을 재생하면 인구가 다시 유입되면서 산업이 살아납니다. ‘도시’는 울타리 없는 산업단지인 셈입니다. 앞으로도 LH가 국가 경제를 위해 할 일이 많습니다. ”

▷인구 감소로 앞으로 집이 남아돌지 않을까요.

“부동산 수요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인구 자체보다 소득과 경제수준, 교통 인프라입니다. 저출산 극복을 위해 취업과 육아, 교통이 편리한 곳에 더 많은 주택을 더 저렴하게 공급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70세 이상까지 경제활동에 참여하는 고령인구 증가도 성장의 또 다른 기회로 삼고 맞춤형 주거공간을 공급할 예정입니다. 법적으로 300가구 이상 주택을 건설할 때 공동육아시설(어린이집)을 설치해야 하는데 개인적으로 법정 기준보다 낮춰서 더 공급하고 싶습니다. 육아문제 해결과 가족 중심 사회 회복을 위해 할아버지·할머니가 아들·딸, 손주와 함께 살면서 출입구와 생활 공간이 분리된 3세대용 ‘세대분리형 임대주택’도 하남 미사강변도시에 87가구를 이미 공급했는데 더 제공할 필요가 있습니다.”

▷LH의 지향점은 무엇입니까.

“땅과 집, 내 가족이 머물 보금자리는 인류의 영원한 화두입니다. 더 좋은 주거환경·공간에서 살고자 하는 인류의 욕구를 잘 파악하고 반영해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변화의 선봉에 서겠습니다. LH는 원래 ‘토지’(land)와 ‘집’(housing)의 앞 글자를 딴 것입니다. 이제 ‘저소득층의 삶의 질 향상’(Low-income housing program)과 ‘고품질의 국토개발’(High-end land development)로 확장됐습니다. 미래엔 국민이 사랑하는 ‘내’ 공기업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LH가 한글 ‘내’와 닮지 않았나요?”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