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메시지 폭탄' 방치하는 낡은 선거법
직장인 이모씨(33)는 얼마 전 고교 동창들이 모여있던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카톡방)에서 나왔다. 한 친구가 카톡방에 한 대선후보의 연설이나 일정 등을 수시로 올리며 지지를 호소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지인들과 소소하게 대화를 나누던 공간이 변질됐다고 느꼈다”며 “사적인 공간에 정치 문자를 남발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대학생 김모씨(23)는 페이스북 친구들을 솎아내고 있다. 그는 “특정 대선후보 지지를 호소하는 게시물을 반복해서 올리는 사람들을 정리하고 있다”며 “요즘 선거 관련 게시물이 부쩍 늘었다”고 했다.

5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카카오톡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선거 메시지’가 폭주하고 있다. 선거법에선 특정 후보 지지를 호소하는 휴대폰 ‘문자 폭탄’ 등을 규제하지만 SNS에서의 선거 메시지는 제재할 방법이 없다.

◆아리송한 선거법

'SNS 메시지 폭탄' 방치하는 낡은 선거법
30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선거법은 지난 2월 다수를 상대로 한 ‘단체 문자’ 발송을 더 까다롭게 하도록 개정됐다. 후보자만 ‘자동 동보통신’으로 선거운동을 위한 단체 문자를 보낼 수 있다. 전송 횟수도 8회로 제한했다. ‘자동 동보통신’은 문자전송 프로그램 등을 이용해 불특정 다수에게 문자를 보내는 걸 말한다. 일반인은 이 같은 프로그램을 활용해 단체문자를 보낼 수 없다. 개인 휴대폰을 쓰더라도 동시에 문자를 받는 수신자가 20명이 넘으면 선거법 위반이 된다. 선관위 관계자는 “선거철마다 되풀이되는 ‘문자 공해’를 막기 위해 법을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카톡방이나 페이스북 등을 통한 선거 메시지는 허용된다. SNS는 법률상 ‘전자우편’ 일종으로 분류된다. 전송 시간이나 횟수 제한도 없고, 이미지 파일 등도 보낼 수 있다. 사실상 무제한 선거운동이 가능하다.

대선 후보자의 방송 출연 제한 규제에도 허점이 있다. 후보자는 교양·오락 프로그램 방송 출연이 금지된다. 선관위 주관의 대담·토론회나 방송연설 등만 나갈 수 있다. 반면 페이스북·유튜브 생중계, 인터넷 팟캐스트 방송 등에 대한 제약은 없다.

◆선거법 허점 노리는 정치권

정치권은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일부 정당은 선거인단 등록을 권하면서 “문자로 전달하지 말고, 카톡으로 전달하라”는 문구를 붙여 홍보했다. 각 선거캠프가 선거법에 저촉되기 쉬운 문자메시지 대신 ‘카톡방’ ‘밴드’ 등을 통한 홍보 전략을 세우고 있다.

선거 당일 SNS를 통한 선거 마케팅은 극에 달할 것으로 우려된다. 개정 선거법에선 선거 당일에도 인터넷·전자우편·문자메시지를 통한 선거 운동을 허용해 주기로 했다. 종전에는 선거 당일 SNS에 엄지손가락, V자 등을 표시한 인증샷을 찍어 올리면 처벌을 받았지만 이번 대선부터 가능해졌다.

선거법이 ‘시대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경찰 관계자는 “선거법이 시대 변화를 제대로 좇아가지 못해 일반인 상식과 괴리가 생기는 일이 발생한다”며 “선거법 위반 사건을 수사하다 보면 법 적용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호할 때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김동현 기자 3co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