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판사라는 직업
옛날 원님들은 하루 대여섯 건씩 소송을 처리했다. 1838년 7월 한 달간 전라도 영암군에 접수된 소장 기록만 187건이다. 연간 2000건에 육박한다. 당연히 날림 재판도 많았을 것이다. 이른바 “네 죄를 네가 알렷다”식의 ‘원님 재판’이다. 이게 억울하면 상급자인 관찰사나 암행어사, 중앙기관인 사헌부에 상소할 수 있었다. 신문고(申聞鼓)로 임금에게 호소하는 길도 있었다. 그래서 암행어사 이몽룡이 춘향을 옥에서 구할 수 있었다.

‘경국대전’이라는 법전과 3심 제도까지 있었으니 나름대로 체계적이었다. 그땐 행정부가 사법부 역할까지 했지만 지금은 3권분립에 따라 사법권이 완전히 독립돼 있다. 판사가 직무상 내린 판결은 어떤 경우에도 문책하지 않는다. 오심일지라도 징계 대상이 아니다. 물론 오심이 잦으면 인사 불이익이 따른다. 뇌물을 받았을 때는 다른 공무원처럼 처벌을 받는다.

검사, 변호사와 함께 ‘법조3륜’으로 불리는 판사. 대법원장과 대법관 14명을 제외한 3000여명의 법관이 이들이다. 예전엔 사법연수원 성적에 따라 판사로 즉시 임용될 수 있었지만 요즘은 변호사 자격 취득 후 일정 기간 법조경력을 쌓아야 한다. 사회 경험 없는 젊은 판사가 법률 지식만으로 재단하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법조일원화’ 조치다. 법관의 대우는 판사 3급 상당, 지방법원 부장판사 1급 상당, 고등법원 부장판사 차관급, 대법원 대법관 장관급이다.

판사의 세계가 화려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잦은 지역 이동으로 툭하면 주말부부가 된다. 인력 보조를 받는 검사와 달리 모든 업무를 혼자 하는 것도 부담이다. 승진해도 업무량이 줄지 않는다. 재판 관련 기록을 모두 꿰뚫어야 한다. 증거 신빙성을 확인하러 현장에 가기도 한다. 격무에 치여 쓰러지거나 과로사하는 경우도 있다.

대법관도 마찬가지다. 대법원에 쌓이는 소송이 연간 3만건을 넘는다. 그만큼 판사를 믿지 못하겠다는 얘기다. 더러는 검은돈을 받고 범죄자의 뒤를 봐주는 ‘향판(鄕判)’ 때문에 법관 전체가 욕을 먹는다. ‘막말 판사’에 ‘떼법 판사’ 비난까지 받는다. 변호사회가 매년 발표하는 ‘법관 평가’에서 혹평을 당하기도 한다. 나쁜 판사 말고 우수 법관으로 호평 받는 판사도 물론 많다.

한국고용정보원의 직업 만족도 조사에서 판사가 1위에 올랐다. 5년 전엔 22위였다. 그새 무슨 변화가 있었을까. 혹시 새로 포함된 ‘급여 만족도’(4위) 항목 때문일까. ‘판관 포청천’ 같은 ‘존경 지수’까지 포함한다면 어떨지도 궁금하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